○지금은 고인이 된 사극작가 신봉승이 마르고 닳도록 우려먹던 인물이 둘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한명회요, 다른 하나는 장희빈입니다. 둘 모두 풍운아였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기에, 그들의 드라마틱한 인생 전개는 딱 드라마의 소재로 그만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장희빈은 궁중암투와 여인들의 질투와 당쟁을 둘러 싼 권력에의 의지, 그리고 미모라는 것의 여성의 가치 등 무수히 많은 논란이 있기에, 시청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습니다. 본래 드라마라는 것은 갈등이 뚜렷해야 시청자들을 사로잡기 때문입니다.
○장희빈 드라마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갈등은 단연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갈등입니다. 장희빈 드라마는 지나치게 장희빈을 악마화했다는 최근의 비판이 있지만, 역대 장희빈 드라마는 장희빈을 악으로, 그리고 인현왕후는 선으로 그렸습니다. 장희빈을 악으로 묘사하는 드라마 속의 장치는 단연 주술입니다. 인현왕후를 형상화한 인형을 궁중의 으슥한 부엌에 놓고 바늘 등으로 인현왕후를 저주하는 장면은 역대 장희빈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은 장면입니다. 그리고 인현왕후는 그 저주의 영향인지 알 수 없지만, 사망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장희빈의 저주와 인현왕후의 사망 간의 인과관계입니다. 이는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모함으로 몰락한 조광조의 경우에도 적용되는 사안입니다.
○주술이란 한마디로 ‘비과학적’입니다. 저주란 주술의 하나입니다. 주술은 조선시대에도 비과학적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비합리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정약용이 법의학을 연구하면서 상세하게 밝힌 바도 있습니다. 그런데 비과학적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인과관계를 전제로 가설과 그 가설에 대한 합리적 검증이 결여된 상태라는 점에 대하여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법률에서도 인과관계를 요구합니다. 위의 장희빈의 사례에서 21세기 현재의 법관은 장희빈에게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상당인과관계가 부정된다고 판결문에 씁니다.
○본래 인과관계는 위에서 본 것처럼, 과학적 분석방법으로 도입된 것입니다. 법학은 사회과학은 아니지만 존재법칙이 아닌 당위법칙의 세계이기에, 자연과학과 같은 정밀한 인과관계까지는 요구하지는 아니합니다. 실은 법관은 자연과학자가 아니기에 구체적인 규명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과학적인 외양을 구비하려고 ‘상당성’이라는 표피를 두르고 상당인과관계가 부정되면 결과를 부정합니다. 대법원(대법원 2023. 4. 27. 선고 2021다262905 판결. 대법원 2011. 4. 14. 선고 2010도10104 판결)은 민사, 형사, 행정 모두 인과관계는 당연히 ‘상당인과관계’를 요구합니다.
○상당성이라는 의미에 대하여 대법원은 일관되게 술에 물을 탄 듯, 그리고 물에 술을 탄 듯이 알 수 없는 모호한 말로 설명을 합니다. 그러나 그 행간의 의미는 ‘엿장수 마음대로’, 즉 ‘법관의 마음대로’입니다. 물론 소박한 시민의 시각으로도 수긍할 수 있는 ‘마음대로’이지만, 다툼의 여지가 있는 사안에서도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여 소송당사자의 희비가 갈립니다. 실제 대법원이 판시한 상당인과관계에 대하여 소송당사자는 물론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뜨겁습니다. 특히 형법학에서의 ‘인과관계론’은 아직도 논쟁이 진행형입니다.
○다음 <기사>는 개인택시를 타고 가다가 택시기사의 실수로 교통사고를 당해 항암치료를 제때 받지 못한 채 사망한 말기 암환자에 대해 법원은 택시기사가 사망자와 유족에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한 사안입니다. 교통사고와 암환자의 사망이 인과관계가 있는가, 여부가 쟁점인 사안입니다. 법원은 상당인과관계를 긍정했습니다. 암환자의 항암치료, 그리고 암환자의 상태 등을 고려하면 생존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암환자의 경험적 통계이고 소박한 시민의 의료상식에도 부합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엉뚱하지만, 재미있는 현실이 대두됩니다. 이렇게 대법원이 일관되게 상당인과관계를 요구하기에, 그 상당인과관계를 ‘직업적으로’ 알 수밖에 없는 법률가들이 현실에서는 주술에 탐닉한다는 점입니다. 당장 윤석열 대통령과 천공이라는 무속인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이전 법률가 출신 정치인을 보더라도 주술은 현직 정치인과 찰떡궁합이었습니다. 법률가 출신 정치지망생들은 과거 이승만 정부시절부터 본인이 공천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당선될 것인지 ‘용하다는’ 점쟁이들을 찾아갔습니다. 정치에 눈이 팔리면 ‘상당인과관계’라는 말은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가 뭐길래!’
<기사> 개인택시를 타고 가다가 택시기사의 실수로 교통사고를 당해 항암치료를 제때 받지 못한 채 사망한 말기 암환자에 대해 법원은 택시기사가 사망자와 유족에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18일 대한법률구조공단(이하 공단)에 따르면 전주지법 민사항소2-1부(재판장 고연금)는 A씨가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이하 연합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연합회는 A씨에게 175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A씨의 남편인 B씨는 2020년 10월 방광암 말기 진단을 받고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에서 항암수술을 받았다. B씨는 수술을 마친 뒤 본가가 있는 전북 전주의 대학병원으로 옮겨 항암치료를 받았다. B씨는 같은해 12월 진료를 받고 택시로 귀가하다가 택시기사의 부주의로 도로 연석을 들이받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B씨는 12주간 치료를 요하는 흉추골절상을 입어 예약된 대학병원 항암치료를 제때 받지 못했고 사고 50여일만인 2021년 2월 초 사망했다. 유일한 상속인인 부인 A씨는 해당 택시가 가입한 연합회에 배상을 요구했지만 배상액으로 제시된 금액은 400만원이 전부였다. A씨는 배상 금액으로 부족하다고 판단해 공단에 도움을 요청했다. 공단은 B씨의 사인이 교통사고로 항암치료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라며 위자료 등 2600여만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택시연합회는 "B씨는 교통사고가 아닌 방광암 때문에 사망했다"며 "경미한 충돌사고에 불과한 이 사고로 흉추골절상을 입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원고 승소 판결하며 A씨의 청구를 전부 받아들였다. 택시연합회가 불복해 진행된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강제조정으로 A씨에게 175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양측 모두 이의제기를 하지 않아 확정됐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8/0004926796?sid=102 <대법원 판례1>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려면 위법한 행위와 원고가 입은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는 결과 발생의 개연성, 위법행위의 태양 및 피침해이익의 성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23. 4. 27. 선고 2021다262905 판결) <대법원 판례2> 한의사인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문진하여 과거 봉침을 맞고도 별다른 이상반응이 없었다는 답변을 듣고 알레르기 반응검사(skin test)를 생략한 채 환부인 목 부위에 봉침시술을 하였는데, 피해자가 위 시술 직후 아나필락시 쇼크반응을 나타내는 등 상해를 입은 사안에서, 피고인에게 과거 알레르기 반응검사 및 약 12일 전 봉침시술에서도 이상반응이 없었던 피해자를 상대로 다시 알레르기 반응검사를 실시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설령 그러한 의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제반 사정에 비추어 알레르기 반응검사를 하지 않은 과실과 피해자의 상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같은 취지의 원심판단을 수긍한 사례. (대법원 2011. 4. 14. 선고 2010도10104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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