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한자성어가 있습니다. 내 논에 물대기, 즉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어떤 사안에 대하여 해석하거나 주장하는 상황을 빗댄 경우를 의미합니다. 아전인수라는 한자성어가 딱 들어맞는 상황이 바로 최근 임금피크제에 대한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2. 5. 26. 선고 2017다292343 판결)에 대한 경영계와 노동계의 해석입니다. 각자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다분히 의도적으로 곡해를 하는 인상이 있는데, 이 판결에 대하여 경영계는 임금피크제를 일방적으로 경영계에 불리하게 해석하여 경영상 무척이나 고통이 예상된다는 반응을 하였고, 노동계는 대법원이 임금피크제 자체를 부정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먼저 양 측 주장의 정당성을 검토하기 전에 임금피크제의 기원에 대하여 생각해 봐야 합니다. 임금피크제는 어떤 실정법이 규정하는 제도가 아닙니다. 호봉제 등으로 고령자를 고용하는 것이 금전적으로 부담스러운 사측과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받으려는 노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정년을 보장하거나 연장하는 대가로 임금피크의 시점에서 일정한 기간 임금이나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제도가 바로 임금피크제입니다. 말하자면, 당사자의 근로관계형성의 자유라는 계약자유의 원칙의 일환에서 비롯된 것이 바로 임금피크제입니다.
○대법원에서 문제된 사안은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형태(당사자는 이를 ‘성과연급제’라 작명함)의 ‘임금피크제’였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임금피크제 매뉴얼은 1). 정년연장형, 2). 재고용형, 그리고 3). 근로시간단축형의 세 가지만을 소개하기에 이 세 가지 유형이 임금피크제의 전부인 양 오해를 하는 분들이 있지만, 임금피크제 자체가 계약자유의 원칙에서 파생한 제도이므로 노사 당사자들은 얼마든지 새로운 유형의 임금피크제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성과연급제라 불린 대법원에서 문제된 사안은 구체적으로 갑이라는 국책연구원이 노동조합과 신인사제도를 시행하기로 합의한 후 기존의 정년 61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55세 이상 정규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내용의 성과연급제를 약정하였는데, 원고인 55세 이상 정규직 연구원이 고령자인 자신에게 고령자고용법상 금지되는 차별적인 성과연급제를 적용한 것이 무효라는 주장을 대법원이 인용한 것입니다. 원고는 종전과 동일한 근로를 제공하였음에도 임금피크제라는 미명하에 종전과 동일한 노동의 가치를 부정당했다고 주장했으며, 고령자의 차별금지라는 고령자고용법의 취지에 반한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위 대법원에서 등장했던 임금피크제는 갑 연구원에서만 통용되는 경우이며, 이 임금피크제는 모든 임금피크제에 적용되는 경우가 아닙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임금피크제는 고용보험법상 임금피크제 지원금과 연계되어 실시됩니다. 고용노동부의 분류도 바로 이 임금피크제 지원금을 전제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고용보험법 시행령은 1). 정년을 연장하되 그 정년이 도래하기 전에 일정 기간 임금을 삭감하는 경우(‘정년연장형’, 고용보험법 시행령 제28조 제1항 제1호), 2). 재직중 또는 정년이후 3개월 이내 재채용하되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경우(‘재고용형’, 고용보험법 시행령 제28조 제1항 제2호), 3). 정년이후 재채용하되 임금을 삭감하는 경우(‘근로시간단축형’, 고용보험법 시행령 제28조 제1항 제3호)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것을 전제로 모든 임금피크제가 이 세 가지 유형밖에 없다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칼럼 중>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1년 6월 말 현재 7만 6507개 사업체에서 임금피크제가 시행 중인데, 이중 55세부터 임금을 삭감하는 곳이 1만 7928곳(23.4%)이다. 평균 임금 삭감률은 10~20%가 전체 사업체의 약 60%(4만 5451곳)이고 1만 7184곳(22.5%)은 삭감률이 30%를 넘는다. 2016년 이후 도입된 임금피크제가 대부분 정년연장형이고 별도 직무를 부여한 것을 고려하면 향후 임금피크제 소송 대란이 온다고 할지라도 근로자측이 승소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대법원 판결이후에도 하급심에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대해 적법한 것으로 판결한 사례도 있다. 노동계가 현재 시행중인 임금피크제의 폐지 내지 임금피크제 개시 연령 상향 및 임금삭감액 축소 등을 재협상을 통해 추진하는 것은 향후 예상되는 정년연장 노사협상을 고려한 전략적 차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https://www.dnews.co.kr/uhtml/view.jsp?idxno=202207261541182860895 <고용보험법 시행령> 제28조(임금피크제 지원금) ① 고용노동부장관은 법 제23조에 따라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이하 이 조에서 "임금피크제"라 한다)에는 근로자에게 임금피크제 지원금을 지급한다. 다만, 제2호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사업주에게도 임금피크제 지원금을 지급한다. 1. 사업주가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받아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연장하거나 정년을 56세 이상 60세 미만으로 연장하면서 55세 이후부터 일정나이, 근속시점 또는 임금액을 기준으로 임금을 줄이는 제도를 시행하는 경우 2. 사업주가 제1호에 따른 제도를 시행하거나 제4호에 따라 정년퇴직 후 3개월 이내에 고용(이하 이 조 및 제28조의4에서 "재고용"이라 한다)하면서 주당 소정근로시간을 15시간 이상 30시간 이하로 단축하는 경우 3. 삭제 4. 정년을 55세 이상으로 정한 사업주가 정년에 이른 사람을 재고용(재고용기간이 1년 미만인 경우는 제외한다)하면서 정년퇴직 이후부터 임금을 줄이는 경우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고령자”란 인구와 취업자의 구성 등을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연령 이상인 사람을 말한다. 2. “준고령자”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연령 이상인 사람으로서 고령자가 아닌 사람을 말한다. 제19조(정년) ①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여야 한다. ② 사업주가 제1항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미만으로 정한 경우에는 정년을 60세로 정한 것으로 본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조(고령자 및 준고령자의 정의) ①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법”이라 한다) 제2조제1호에 따른 고령자는 55세 이상인 사람으로 한다. ② 법 제2조제2호에 따른 준고령자는 50세 이상 55세 미만인 사람으로 한다. <대법원 판례>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구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2020. 5. 26. 법률 제1732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4조의4 제1항에서 말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경우란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다르게 처우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아니하거나 달리 처우하는 경우에도 그 방법·정도 등이 적정하지 아니한 경우를 말한다.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형태의 이른바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경우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없어 그 조치가 무효인지는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었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22. 5. 26. 선고 2017다292343 판결) |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의 다음 칼럼은 바로 이 임금피크제가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다양하게 발현될 수 있음을 확실히 인지하고 서술한 것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임금피크제에 대한 이해는 정확하며 경영계와 노동계의 극단적인 주장들의 부당성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박영범 교수의 이러한 일련의 설명이 타당함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임금피크제는 특정 기업이나 특정 근로자에게만 이해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향후 고령자인력의 활용이라는 국가 차원의 경제적 효율성을 담고 있는 제도이므로, 엉성하고 어설픈 이해보다는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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