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세대들은 물론 그 이전의 국·한문 혼용세대 상당수가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자를 쓰고 중국어가 모국어인 중국인은 물론 한자와 카나를 혼용하는 일본인 상당수가 한자에 능할 것이라는 오해가 바로 그것입니다. 현실에서 중국인, 일본인 상당수가 한자와 그 정확한 용례를 모릅니다. 한자 자체가 많은 데다가 용례가 많아서 어느 경우에 정확한 한자를 써야 하는지 자체가 아리송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중국어는 성조라도 있어서 한자 하나하나가 나름 구분이 되는데, 일본어는 모음과 자음으로 완벽하게 구분된 한글과 달리, 카나 글자 각각 음이 있고 하나의 음절로 사용되기에 창출할 수 있는 발음이 적고, 자연히 동음이의어가 범람합니다. 일본어는 같은 한자라도 훈독과 음독이 따로 쓰이기에, 한자문화권이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은 카나와 한자 모두를 배워야 하기에, 그 배우는 난이도가 극악입니다.
○한글전용으로 살아도 별 불편이 없는 후손으로서는 세종의 위대함을 매일, 그리고 매시간 체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법원 판결문을 보더라도 전부 한글로 기재되어 있어도 이해에는 그리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법률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같은 글자의 법률용어라도 해당 법률이나 해당 법조문의 위치 등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 것이 종종 있습니다. 가령, 책임이라는 법률용어는 형사법과 민사법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또한 같은 민사법에서 쓰이는 ‘사용자’라는 법률용어도 그 의미가 다르기도 합니다. 민법 제756조가 규정하는 사용자책임의 ‘사용자’와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2호의 사용자는 같은 듯 달리 쓰이는 법률용어입니다. 물론 양자의 의미가 백두산과 한라산처럼 무관하지도 않습니다.
○노동법의 영역에서는 근로자와 사용자 간의 관계가 주류를 이룹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근로자는 내부적으로는 동료 근로자, 외부적으로는 제3자와 교류를 합니다. 제3자와는 협력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제3자에게 가해행위를 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물론 동료에게 가해행위를 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이렇게 고용한 근로자가 제3자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에 사용자가 돈을 물어줘야 하는 것을 사용자책임(민법 제756조)이라 합니다. 민사상 책임은 궁극적으로는 돈으로 물어줘야 하기에(금전배상주의), 돈을 물어준다는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사용자는 자신이 직접 행한 가해행위가 아님에도 왜 돈을 물어줘야 하는가,입니다. 대법원은 보상책임의 원리를 그 근거로 제시합니다. 타인을 고용해서 돈을 버는 사람은 그 고용에 따른 손해도 감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법원(대법원 1985. 8. 13. 84다카979)은 ‘많은 사람을 고용하여 스스로의 활동영역을 확장하고 그에 상응하는 많은 이익을 추구함에 있어서는, 그 많은 피용자의 행위가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경우도 상대적으로 많아질 것이므로 이러한 손해를 이익귀속자인 사용자로 하여금 부담하게 하는 것이 공평의 이상에 합치된다는 보상책임의 원리에 입각한 것이다.’라고 판시합니다. 근로자를 고용해서 거액을 버니까 그 이윤에 따른 리스크도 감내하라는 의미입니다. 보상책임이라는 대법원의 이론적 근거는 만국공통입니다.
○사용자책임상의 사용자는 근로기준법상의 고용관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외형상 사용 – 피용의 관계만 있으면 족합니다. 민법이 ‘피용자’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사용자책임은 보상책임의 원리에 따른 제3자를 보호하려는 취지이기에 대법원(대법원 2010. 10. 28. 선고 2010다48387 판결)은 ‘민법 제756조의 사용자와 피용자의 관계는 반드시 유효한 고용관계가 있는 경우에 한하는 것이 아니고, 사실상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그 지휘·감독 아래 그 의사에 따라 사업을 집행하는 관계에 있을 때에도 그 두 사람 사이에 사용자, 피용자의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라고 판시하여 오피스텔 건축 시행사와 분양대행용역계약을 체결하여 분양대행업무를 수행하는 경우에도 사실상 시행사의 지휘·감독 아래 시행사의 의사에 따라 분양대행업무를 수행하였다면 사용자, 피용자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분양대행사는 외부적으로도 분양대행사임을 명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근본적인 의문이 발생합니다. 같은 글자를 쓰면서도 왜 법률구성을 달리하는가, 입니다. 당연히 ‘법률적 필요에 의해서’ 라는 답변이 부가됩니다. 사용자책임상의 사용자의 기능과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용자는 양 법률의 기능상 달리 작동합니다. 당장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라 하더라도 어떤 경우에는 근로자로, 다른 경우에는 사용자로 기능합니다(사용자 개념의 이원적 성격). 법률이 달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법률의 속성입니다. 그리고 사회가 발전하면 법률도 복잡해집니다. 인간사는 복잡다기(複雜多岐)합니다.
<근로기준법> 제2조(정의) ①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 2. “사용자”란 사업주 또는 사업 경영 담당자, 그 밖에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를 말한다. <민법> 제756조(사용자의 배상책임) ① 타인을 사용하여 어느 사무에 종사하게 한 자는 피용자가 그 사무집행에 관하여 제삼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사용자가 피용자의 선임 및 그 사무감독에 상당한 주의를 한 때 또는 상당한 주의를 하여도 손해가 있을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사용자에 갈음하여 그 사무를 감독하는 자도 전항의 책임이 있다. ③ 전2항의 경우에 사용자 또는 감독자는 피용자에 대하여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법원 판례> [1] 민법 제756조에 규정된 사용자책임의 요건인 ‘사무집행에 관하여’라는 뜻은 피용자의 불법행위가 외형상 객관적으로 사용자의 사업활동 내지 사무집행행위 또는 그와 관련된 것이라고 보일 때에는 행위자의 주관적 사정을 고려함이 없이 이를 사무집행에 관하여 한 행위로 본다는 것이고, 여기에서 외형상 객관적으로 사용자의 사무집행에 관련된 것인지 여부는 피용자의 본래 직무와 불법행위와의 관련 정도 및 사용자에게 손해발생에 대한 위험창출과 방지조치 결여의 책임이 어느 정도 있는지를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2] 피용자의 불법행위가 외관상 사무집행의 범위 내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에도 피용자의 행위가 사용자나 사용자에 갈음하여 그 사무를 감독하는 자의 사무집행행위에 해당하지 않음을 피해자 자신이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알지 못한 경우에는 사용자책임을 물을 수 없는바, 이 경우 중대한 과실이라 함은 거래의 상대방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피용자의 행위가 그 직무권한 내에서 적법하게 행하여진 것이 아니라는 사정을 알 수 있었음에도 만연히 이를 직무권한 내의 행위라고 믿음으로써 일반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에 현저히 위반하는 것으로 거의 고의에 가까운 정도의 주의를 결여하고, 공평의 관점에서 상대방을 구태여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상태를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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