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후장상이라고 그 씨가 따로 있는가!(王侯將相寧有種乎) 이 말은 고려 무인정권시대 최충헌의 가노(家奴)로서 ‘노비의 반란’을 일으킨 만적(萬積)의 말로 유명해졌습니다. 물론 원조는 당연히 만적은 아니고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의 가혹한 학정에 항거한 진승이 최초로 했던 말입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는 자신들과 같은 미천한 계급의 인물들에게도 왕후장상과 같은 신분을 취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임은 물론입니다. 만적도 ‘노예의 문적(文籍)을 불질러, 나라로 하여금 노예가 없는 곳으로 만들면 우리도 공경대부 같은 높은 벼슬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라고 실제로 선동했습니다.
○만적의 말은 다음 대법원 판례(대법원 2023. 9. 21. 2016다255941 전원합의체 판결)와 무척이나 오버랩이 됩니다. 공무직 근로자가 자신들의 직무가 사실상 공무원과 동일함에도 왜 수당, 성과상여금 등에 있어서 공무원과 차이가 존재하는가, 라는 항변이 원고인 공무직 근로자의 청구이유에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법률상의 청구이기에, 그 법률적 근거로 근로기준법 제6조에 규정된 차별적 처우의 금지입니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이 사안을 판단했습니다. 전원합의체 판결은 법원조직법 제7조 제1항 각호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각호에 규정된 사유는 법령해석의 통일이라는 대법원의 헌법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함입니다. 전원합의체 판결 자체가 헌법재판의 속성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만적의 말이 원조가 있듯이, 헌법재판도 당연히 원조가 있습니다. 하드웨어는 독일이고, 소프트웨어는 미국입니다. 차별적 취급에 대한 소프트웨어는 다인종국가 답게 미연방대법원이 판례법으로 형성하였습니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세칭 ‘잡사건’은 판결하지 않습니다. 철저한 허가상고제를 취한 결과입니다. 그리하여 인종, 연령, 남녀 등의 차별적 취급과 같이 중요한 헌법적 판단과 관련된 사안만을 판단합니다. 위 대법원 판결은 미국에서도 연방대법원이 판단할 만한 중요한 헌법적 쟁점을 품고 있습니다.
○위 사안은 크게 두 개의 집단이 존재합니다. 먼저 ‘국도관리원’인 공무직 근로자집단(A)이 있습니다. A는 무기계약직입니다. 그리고 공무원집단(B)이 있습니다. A가 주장하기를, 도로의 유지·보수 업무 또는 과적차량을 단속하는 업무를 수행한 근로자들인 A에게 피고, 즉 대한민국은 가족수당과 성과상여금 등을 지급하는 국토교통부 소속 운전직 및 과적단속직 공무원들과 차별취급을 하면서 A에게는 위 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청구이유에서 주장하였습니다. 요약하면, A와 B는 사실상 동일한 일을 함에도 국가는 B에게만 가족수당과 성과상여금 등을 지급하였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1).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이 아니며, 2). 동일한 비교집단이 아니기에 차별적 취급의 전제성을 결여했다는 논거로 A의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이 판결에서 주목되는 것은 김선수 대법관을 중심으로 한 반대의견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반대의견이 더 설득력이 강했습니다. 그중에서 1). 비교대상 근로자는 같은 종류의 업무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논거가 주목되었습니다. A와 B 중에서 운전직 공무원과 과적단속직 공무원은 원고들과 같거나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므로 비교대상 근로자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소박한 상식에도 맞습니다. 2). 무기계약직 근로자라는 고용상 지위는 사회적 신분이라 본 것이 반대의견인데, 이 역시 소박한 시민의 눈높이로 봐도 수긍이 가능합니다.
○공무를 구분하는 경우에, 1). 권력작용과 2). 비권력작용으로 크게 구분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등장하는 사례는 비권력작용 중에서 사실행위에 속합니다. 공권력이 발동되는 전형적인 공행정영역이 아닌 위 사례는 이른바 ‘공행정영역의 민영화’ 간단히 줄여서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이미 선진국에서는 광범위하게 실시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의 원조인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뭔가 부족하고 아쉬움이 남습니다.
<법원조직법> 제7조(심판권의 행사) ① 대법원의 심판권은 대법관 전원의 3분의 2 이상의 합의체에서 행사하며, 대법원장이 재판장이 된다. 다만, 대법관 3명 이상으로 구성된 부(部)에서 먼저 사건을 심리(審理)하여 의견이 일치한 경우에 한정하여 다음 각 호의 경우를 제외하고 그 부에서 재판할 수 있다. 1. 명령 또는 규칙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인정하는 경우 2. 명령 또는 규칙이 법률에 위반된다고 인정하는 경우 3. 종전에 대법원에서 판시(判示)한 헌법ㆍ법률ㆍ명령 또는 규칙의 해석 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4. 부에서 재판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근로기준법> 제6조(균등한 처우)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성(性)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ㆍ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근로기준법 제6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ㆍ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라고 하여 ‘균등한 처우 원칙’ 또는 ‘차별적 처우 금지 원칙’을 규정하는 한편, 제114조 제1호에서 그 위반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까지 규정하고 있다. 이는 사용자로 하여금 복수의 근로자들 사이에 합리적 이유 없는 차등 처우를 금지하여 헌법 제11조의 평등원칙을 개별적 근로관계에서 구현하기 위한 조항으로서, 차별적 처우는 복수의 근로자들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근로자 집단에 속하는 것을 전제로, 그럼에도 합리적 이유 없이 서로 다르게 취급하는 경우에 한하여 성립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원고들에 대한 처우가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한 차별적 처우라고 보기 위해서는 차별의 사유가 되는 원고들의 지위가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여야 하고, 원고들이 지목하는 비교대상자인 공무원들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근로자 집단에 속하여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6조에서 말하는 사회적 신분이 반드시 선천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사회적 지위에 국한된다거나 그 지위에 변동가능성이 없을 것까지 요구되는 것은 아니지만, 개별 근로계약에 따른 고용상 지위는 공무원과의 관계에서 근로기준법 제6조가 정한 차별적 처우 사유인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공무원은 그 근로자와의 관계에서 동일한 근로자 집단에 속한다고 보기 어려워 비교대상 집단이 될 수도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공무원 지위의 특수성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헌법 제7조). 공무원은 노무의 대가로 얻는 수입에 의존하여 생활한다는 점에서 근로자로서의 성격을 가지지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공공성, 공정성, 성실성, 중립성 등이 요구되기 때문에 일반 근로자와는 다른 특별한 근무관계에 있다(헌법재판소 2017. 8. 31. 선고 2016헌마404 결정 참조). 공무원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근무관계는 사법상 근로계약으로 형성되는 관계가 아니라 임용주체의 행정처분인 임명행위로 인하여 설정되는 공법상 신분관계이다. 일반 근로자가 사용자에 대하여 취업규칙이 정한 복무규율에 따라 직무상 명령에 복종할 의무 등을 부담하는 것과 달리, 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 및 지방공무원법 규정에 따라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할 의무를 비롯하여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친절하고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할 의무, 청렴의 의무, 종교중립의 의무 등 헌법과 법령이 정한 다양한 의무를 부담하고, 근무시간 외에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며, 정치운동이 금지되고 집단행위도 원칙적으로 금지된다(국가공무원법 제56조 내지 제66조, 지방공무원법 제48조 내지 제58조). 이처럼 공무원은 업무 내ㆍ외적으로 일반 근로자보다 무거운 책임과 높은 윤리성을 요구받는 지위에 있다. 2) 근무조건의 결정방식 가) 공무원의 보수 등에 관하여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은 이른바 ‘근무조건 법정주의’를 규정하고 있다(국가공무원법 제46조 제5항, 지방공무원법 제44조 제4항). 이는 공무원이 헌법 제7조에 정한 직업공무원 제도에 기하여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특수한 지위를 가지므로 국민 전체의 의사를 대표하는 국회에서 그 근무조건을 결정하도록 함이 타당할 뿐 아니라, 공무원의 보수 등은 국가예산에서 지급되는 것이므로 헌법 제54조에 따라 예산안 심의ㆍ확정 권한을 가진 국회로 하여금 예산상의 고려가 함께 반영된 법률로써 공무원의 근무조건을 정하도록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대법원 2016. 8. 25. 선고 2013두14610 판결, 대법원 2018. 2. 28. 선고 2017두64606 판결 등 참조). 나) 헌법 제33조 제1항은 근로자의 자주적인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으면서도, 공무원의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지위 및 그 직무의 공공성을 고려하여 합리적인 직업공무원 제도를 보장하고 이와 관련한 주권자의 권익을 공공복리의 목적 아래 통합적으로 조정하기 위하여 같은 조 제2항에서 공무원인 근로자에 대하여는 법률로 이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였다(헌법재판소 2008. 12. 26. 선고 2005헌마971 등 결정 참조). 이에 따라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은 법령ㆍ조례ㆍ예산 및 하위규정과 다른 내용으로 체결되는 단체협약에 대하여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제10조 제1항), 공무원에 대하여 일체의 쟁의행위도 금지하고 있다(제11조). 이러한 규정들로 인하여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공무원의 경우에도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의 행사를 통해 근로조건의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여지가 적다. 다) 이와 달리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와 사법상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들은 근로기준법이 강행규정을 통해 보호하는 범위 내에서 그 근로계약 및 단체협약이 정한 바에 따라 처우가 결정되므로, 노동3권의 행사에 있어서 특별한 법적 제한을 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 사건에서도 국도관리원들은 이 사건 공무원들과는 달리 보수에 관해서도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고, 실제로 단체협약을 통해 호봉제를 도입하는 등 임금 등 근로조건을 개선하여 왔다. 3) 공무원 보수의 성격 공무원에게 지급되는 보수는 근로의 대가로서의 성격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직업공무원 제도의 유지를 위한 목적도 포함되어 있다. 이 사건 각 수당 중 직급보조비는 지급 대상자인 공무원의 직급에 따른 업무 수행에 수반되는 제 비용을 보전해 주는 차원에서 지급되는 수당이고(헌법재판소 2015. 6. 25. 선고 2012헌마494 결정 등 참조), 성과상여금은 실적과 성과가 우수한 공무원에게 더 많은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공무원들의 근무의욕을 고취시켜 업무수행능력의 지속적 향상을 유도하고 공직사회의 경쟁력과 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에서 도입된 것이다(대법원 2017. 2. 9. 선고 2013다205778 판결 참조). 가족수당 역시 공무원의 처우개선 및 생활비 보조를 위하여 도입된 것이다. 이처럼 공무원에게 지급되는 각 수당은 공무원 조직의 특수성을 반영하거나 공무원의 생활 보장 등 정책적 목적을 함께 가지고 있다. 4) 업무의 변경가능성과 보수체계 근로자에 대한 전직이나 전보처분은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처분이 될 수 있으므로 정당한 이유 없이 전직 등을 할 수 없다는 제한을 받고(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 근로계약에서 근로내용이나 근무장소를 특별히 한정한 경우에 이를 벗어난 전직에 대해서는 근로자의 동의가 요구된다(대법원 1997. 7. 22. 선고 97다18165, 18172 판결 참조). 반면 공무원에 대한 전보인사는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등 공무원 관련 법령에 근거한 것으로서 위와 같은 법령의 제한 내에서 인사권자는 상당한 재량을 가지고 있고, 인사권자가 한 전보인사는 법령이 정한 기준과 원칙에 위반하여 인사재량권을 일탈ㆍ남용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적법하다(대법원 2009. 5. 28. 선고 2006다16215 판결 참조). 이 사건 공무원들 역시 국토교통부 소속 국가공무원으로서 국토교통부장관의 전보인사에 따라 근무장소를 이동하거나 도로보수 및 과적차량 단속과 관련이 없는 부서에서 보직을 맡아 수행할 가능성이 열려 있는 반면, 국도관리원은 근로계약에서 정한 근무장소(국토관리사무소)에서 도로보수 및 과적차량 단속 업무만을 수행하는 것이 원칙이어서 채용권자가 가지는 인사권의 폭이 좁다. 공무원의 봉급은 기본적으로 공무원의 종류(일반직, 연구직, 경찰ㆍ소방직 등), 계급 또는 직무등급, 호봉 등에 따라 결정되고, 공무원이 특정 시기에 담당하는 보직이나 업무의 내용에 따라 달라지지는 않는다. 원고들이 문제 삼는 이 사건 각 수당을 포함하여 공무원수당규정이 정한 수당 중 대부분은 국가공무원 일반에게 공통적으로 지급되는 것이지, 이 사건 공무원들이나 이와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에게만 지급되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공무원의 보수체계는 공무원이 담당하는 업무를 기초로 설정된 것이 아니므로 특별한 법률의 규정이 없는 한 공무원과 공무원이 아닌 근로자의 업무 내용에 유사한 부분이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앞서 본 지위 및 근로조건 결정 방법 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무원과 같은 처우가 보장되어야 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 한편 원고들은 근로계약 기간 중 언제든지 공무원 채용 절차를 거쳐 공무원으로 임용됨으로써 업무 및 보수에서 공무원과 같은 처우를 받을 수 있고, 거기에 어떠한 법률적, 제도적 장애사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법원 2023. 9. 21. 2016다255941 전원합의체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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