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600만불의 사나이’를 보면 정말 엉성하다는 생각이 이어집니다. 느리게 필름을 돌리지만 그냥 평범하게 뛰거나 보는 것임에도 마치 초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뚜뚜뚜’하는 것이 유치하기까지 합니다. 21세기 CG는 과거의 것을 유치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득 ‘600만불의 사나이’는 극중 OSI라는 국가기관의 월급을 받기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령, 슈퍼 히어로 중에서 슈퍼맨이나 배트맨, 그리고 스파이더맨은 자비로 영웅적인 활약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극중 흐름의 자연성을 부각하려고 배트맨은 억만장자라는 설정을 했습니다. 슬프게도 스파이더맨은 영웅적인 활약을 하기 전에 가난하기에 ‘왜 내가 돈도 안 생기는 이런 활약을 하나?’하면서 자괴감에 빠지는 장면도 등장합니다. 스파이더맨은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우리시대의 가난한 청년이 주인공입니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슈퍼히어로가 하는 행동은 국방과 치안이라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경제학상 공공재라 불리는 공공서비스영역입니다. 공공재를 공급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정부가 합니다. 서비스 공급에 대한 막대한 비용대비 수익을 창출하기가 쉽지 않다는 특성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600만불의 사나이’는 정부에서 월급을 주기에 위험활동에 대한 나름의 대가를 보상받습니다.
그러나 슈퍼맨 등의 슈퍼히어로는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합니다. 대가를 받지고 못하면서 영화 속에서는 활약이 미진하다고 시민들의 성토까지 받습니다. 그 성토 시민에게 막상 너희들도 돈을 받지 않고 영웅적인 활약을 해보라 하면 거의 하지 않을 것입니다. 목숨까지 걸면서 남의 일에 나서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비합리적이고 비경제적인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슈퍼히어로 영화의 천국인 미국에서 막상 자비로 슈퍼히어로처럼 목숨을 걸고 영웅적 활약을 하는 시민은 전혀 없습니다. 일단 의욕이 있어도 막대한 돈을 조달할 수 없고, 그 투입한 돈에 대한 보상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는 마르고 닳도록 배트맨 시리즈가 등장하지만, 현실에서는 배트맨과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이익은 고사하고 투하하는 원본에도 미치지 못하는 영웅적 활약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국방과 치안서비스는 만국 공통으로 국가와 지자체가 부담합니다.
결론이 경제학상의 공공재로 흐른다고 오해할 수는 있지만, 이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사람은 본래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삶을 살아가기에 남을 돕는다거나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에게 보상은 그만두고 최소한 존경의 마음은 가져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그나마 살 만한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 있어서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eOKdYj6guI
'7080연예한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얼굴 없는 가수 신형원의 이 노래 : ‘불씨’> (0) | 2021.04.03 |
---|---|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 (0) | 2021.03.26 |
<남진의 이 노래 : ‘가슴 아프게’> (0) | 2021.03.14 |
<‘서울의 달’, 그리고 홍진희> (0) | 2021.03.03 |
<조용필의 이 노래 : ‘미지의 세계’> (0) | 2021.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