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01년 전 현진건은 ‘술 권하는 사회’라는 사회풍자소설을 썼습니다. 식민시대 지식인의 울분을 술로 삭이면서도 세상이 술을 권한다는 다소 엉뚱한 발상으로 현진건 특유의 소설미학을 보여줬습니다. 물론 지금 읽어봐도 현진건 특유의 촘촘하고 사실감 넘치는 묘사가 일품입니다. 그런데 한국인이 술을 마시는 것은 암울한 시대적 상황만이 아닙니다. 즐거움을 축배로 나누고 고통을 술로 삭이며 우정을 술로 다독이는 것은 수 천년간 이어진 특수한국적인 술문화입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술에 관대한 나라입니다. 근래에 음주운전에 대하여 엄한 법원의 판결이 이어지지만, 음주 자체에 대한 단죄라거나 부정적 판단은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주에서 공원 등 야외에서의 음주 자체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형벌의 대상이 됩니다. 여의도공원에서 치킨을 시켜놓고 대낮에 고성방가를 하는 한국과는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금주법의 전통(?)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모이면 술은 자동적으로 동참합니다. 직장인들의 회식도 그렇습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은 회식에 대하여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음식을 먹음. 또는 그런 모임.’이라고 정의를 내립니다. 술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회식에는 술이 등장합니다. 여직원들만 모이는 한낮 회식이 아닌 한 저녁의 회식에 술이 배제되는 것이 더 이상합니다. 현진건이 지하에서 ‘너희 후손들이라고 별수 있냐?’라고 파안대소를 할지도 모릅니다. 술은 잘 마시는 사람도 있지만, 한 모금도 못 마시는 사람도 있습니다. 회식은 자의반타의반 마시게 되는 강제성 있기에 사단의 인자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회식 불참 시에 해고의 위협을 받는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회식과 술이 강한 상관관계라는 점이 불참의 이유라는 것은 국민상식입니다.
○회식 중의 사고는 업무상 사고의 대표적 유형인 사업주가 주관하거나 사업주의 지시에 따라 참여한 행사나 행사준비 중에 발생한 사고(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법), 제37조 제1항 제1호 라목)입니다. 그런데 음주 후에 인간은 정상적인 판단능력이 저하되거나 상실됩니다. 그래서 사고가 빈발합니다. 취중사고를 업무상 사고로 볼 수 있는가 여부가 당연히 다퉈질 수 있습니다. 취중사고를 제한없이 인정하면 진정 ‘술 권하는 사회’의 후과가 됩니다. 대법원(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6두54589 판결 등)은 음주와 업무상 사고와의 관련성을 구분하는 척도로 ‘상당인과관계’를 제시합니다. 말이 좋아 상당인과관계이지 뜬구름 잡는 소리입니다.
○대법원은 조금 구체성을 가진 논리를 전개합니다. 대법원(위 판결)은 음주 자체의 원인이 천태만상이고 음주자의 주량 등 상태가 제각각인 점을 전제로 ‘업무·과음·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는 사업주가 과음행위를 만류하거나 제지하였는데도 근로자 스스로 독자적이고 자발적으로 과음을 한 것인지, 재해를 입은 근로자 외에 다른 근로자들이 마신 술의 양은 어느 정도인지, 업무와 관련된 회식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따르는 위험의 범위 내에서 재해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 과음으로 인한 심신장애와 무관한 다른 비정상적인 경로를 거쳐 재해가 발생하였는지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라고 판시를 합니다. 진리의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대법원 판례를 비난하는 분들도 있지만, 다양한 원인에 의하여 발생하는 음주와 업무상 사고를 획일화하는 것도 추상적인 업무상 사고의 개념과는 불일치합니다.
○이렇게 그물망과 같이 업무상 사고의 개념을 정의하면 역설적으로 음주와 업무상 사고의 개념이 오리무중일 수 있습니다. 급할수록 원칙에 충실하여야 합니다. 산재법이 제시하는 ‘사업주가 주관하거나 사업주의 지시에 따라 참여한 행사나 행사준비’인가에서부터 사안을 검토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대법원의 상당인과관계의 구체적 충족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기사> 전북 남원 한 새마을금고 지점에서 여직원에게 밥을 짓게 하고 빨래를 시켜 공분을 산 가운데 피해자 A씨가 이사장 등으로부터 회식 불참 시 다른 근거 규정으로 해고시킬 것이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추가 폭로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8/0005307052?sid=102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업무상의 재해의 인정 기준) ① 근로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로 부상ㆍ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하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 다만,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相當因果關係)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업무상 사고 가. 근로자가 근로계약에 따른 업무나 그에 따르는 행위를 하던 중 발생한 사고 나. 사업주가 제공한 시설물 등을 이용하던 중 그 시설물 등의 결함이나 관리소홀로 발생한 사고 다.삭제 라. 사업주가 주관하거나 사업주의 지시에 따라 참여한 행사나 행사준비 중에 발생한 사고 마. 휴게시간 중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행위로 발생한 사고 바. 그 밖에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사고 중략 ② 근로자의 고의ㆍ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ㆍ질병ㆍ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 다만, 그 부상ㆍ질병ㆍ장해 또는 사망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낮아진 상태에서 한 행위로 발생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으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 <대법원 판례> [1] 사업주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는 회식 과정에서 근로자가 주량을 초과하여 음주를 한 것이 주된 원인이 되어 부상·질병·신체장해 또는 사망 등의 재해를 입은 경우, 이러한 재해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한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 이때 업무·과음·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는 사업주가 과음행위를 만류하거나 제지하였는데도 근로자 스스로 독자적이고 자발적으로 과음을 한 것인지, 재해를 입은 근로자 외에 다른 근로자들이 마신 술의 양은 어느 정도인지, 업무와 관련된 회식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따르는 위험의 범위 내에서 재해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 과음으로 인한 심신장애와 무관한 다른 비정상적인 경로를 거쳐 재해가 발생하였는지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2] 갑이 회사 회식에 참가하던 중 2차 회식 장소인 단란주점 건물 계단에서 추락하는 사고로 ‘뇌경막외출혈, 두개골골절, 뇌좌상, 뇌지주막하출혈’ 진단을 받고 요양급여를 신청하였으나 근로복지공단이 ‘사업주가 주관하거나 사업주의 지시에 따라 참여한 행사 중 사고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요양불승인처분을 한 사안에서, 1차 회식과 마찬가지로 2차 회식 역시 사용자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있고, 나아가 갑이 부장 등의 만류나 제지에도 과음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회식 장소에서 전화를 받으러 나간다거나 화장실에 다녀오는 등의 행위는 회식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것으로서 순리적인 경로를 벗어났다고 단정할 수도 없으므로, 업무와 관련된 회식자리의 음주로 인한 주취상태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갑이 단란주점 계단에서 실족하여 사고를 당하였다고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위 사고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한 사례. (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6두54589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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