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목숨을 걸고 모셨던 조폭 보스가 자신을 죽이려 하자 조폭 보스의 오른팔로 활동했던 이병헌이 자신의 보스인 김영철에게 복수를 감행하면서 따지듯이 ‘왜 그랬어요?’라고 묻자, 보스 김영철이 했던 대답,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는 영화사의 명대사로 꼽힙니다. 그런데 왜 모욕감을 줬는지 보스 김영철은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습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보스 김영철이 자신의 애인 때문인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지만, 정작 보스 김영철은 오른팔 이병헌에게 끝내 말하지 않습니다. 실은 자존심이 상하는 측면이 있기는 합니다. 인생사에서 구구절절 설명을 하는 것이 구차하고 쪽이 팔리는 순간이 많기는 합니다. 가수 김종서의 ‘지금은 알 수 없어’의 가사에서도 영문도 모른 채 연인으로부터 이별을 통보받는 것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점을 적절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과거 사극에서 단골손님격으로 등장했던 악질사또가 고을의 무고한 백성을 잡아다가 곤장을 때리면서 ‘네 죄를 네가 알렸다!’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클리셰 장면은 오랜 기간 시청자들의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풍습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시절에도 존재했습니다. 박종철은 ‘어서 불어!’라는 경찰관의 고문을 받다가 스러져갔습니다.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것입니다. 형사절차에서 ‘미란다고지’는 이렇게 이유도 없이 신체의 구속을 받는 경우를 배제하기 위한 헌법적 인권보장제도인 것입니다.
○근로기준법은 해고절차에서 해고근로자의 권리보장절차로 해고사유 서면통지제도를 창설하였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해고를 당했던 쓰라린 근로자의 권리신장을 도모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21세기입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해고를 당하는 경우는 소규모 영세기업이 아닌 이상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용자도 무식하게 자기를 위하여 일했던 근로자를 무자비하게 해고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근로자가 해고사유의 통지제도를 악용하는 경우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근로기준법이 절대적으로 근로자만을 보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해고사유의 서면통지제도는 구체적으로 기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다소 축약된 것이라도 이를 전부 무효로 볼 것인가는 의문이 있습니다. 근로자는 현실에서는 징계사유를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대법원 판결로 명쾌하게 이 점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비위사실이 있는 해고근로자의 업무처리와 관련한 개최된 회의에서 경영진이 해고를 결정한 다음에, 당해 회의에 참가한 해고근로자가 회의록에 서명을 하고 그 사본을 교부받은 사안에서, 해고근로자가 위 회의록에 의해 해고통지를 받을 당시 이미 해고사유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을 이유로 업무상 잘못이 다소 축약적으로 기재되었고 회의록의 형식으로 작성되었더라도 위 회의록에 의한 해고통지가 근로기준법 제27조를 위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대법원 2021. 7. 29. 선고 2021두36103 판결)’고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해고대상 근로자는 자신의 비위사실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사용자가 아무런 사유도 없이 막연하게 근로자를 해고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기 때문입니다. 2022. 1. 14.에 해고사유 서면통지제도에서 해고사유의 축약적 기재의 현실적인 의미를 담은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 사안은 기간제교원에게 학교법인이 ‘담당 학생들에 대한 부적절한 신체접촉 및 발언으로 다수의 학생들이 불쾌감이나 수치심을 느꼈다’는 내용이 담긴 통지서를 통하여 근로계약을 해지하였고, 이 해고의 절차적 적법성에 의문을 품은 원고 기간제교원이 소송을 제기한 사안입니다.
○원심은, 이 사건 통지서상 해고사유가 축약기재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비위행위가 기재되지 않고, 원고가 이미 해고사유가 되는 비위행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고 그에 대해 충분히 대응할 수 없다고 보아 이 사건 해고에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보았으나, 대법원은 이 사건 통지서상 원고의 해고사유를 이루는 개개 행위의 범주에 다소 불분명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때문에 원고가 이 사건 해고에 대하여 충분히 대응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그와 같은 원심의 판단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요약하자면, 왜 해고를 했는지 이미 통지한 서면과 전후사정을 통하여 해고근로자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근로기준법> 제27조(해고사유 등의 서면통지) ①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한다. ② 근로자에 대한 해고는 제1항에 따라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효력이 있다. ③ 사용자가 제26조에 따른 해고의 예고를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명시하여 서면으로 한 경우에는 제1항에 따른 통지를 한 것으로 본다. <대법원 판례1> [1] 근로기준법 제27조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효력이 있다고 정하고 있다. 이는 해고사유 등의 서면통지를 통하여 사용자로 하여금 근로자를 해고하는 데 신중을 기하도록 하고, 해고의 존부, 시기와 그 사유를 명확하게 하여 나중에 이를 둘러싼 분쟁이 적정하고 용이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하며, 근로자에게도 해고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사용자가 해고사유 등을 서면으로 통지할 때 해고통지서 등 명칭과 상관없이 근로자의 처지에서 해고사유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서면이면 충분하다. (대법원 2021. 7. 29. 선고 2021두36103 판결) <대법원 판례2> 근로기준법 제27조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효력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해고사유 등의 서면통지를 통해 사용자로 하여금 근로자를 해고하는 데 신중을 기하게 함과 아울러 해고의 존부 및 시기와 그 사유를 명확하게 하여 사후에 이를 둘러싼 분쟁이 적정하고 쉽게 해결될 수 있도록 하고, 근로자에게도 해고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취지이므로, 사용자가 해고사유 등을 서면으로 통지할 때는 근로자의 처지에서 해고사유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하고, 특히 징계해고의 경우에는 해고의 실질적 사유가 되는 구체적 사실 또는 비위내용을 기재하여야 하지만, 해고 대상자가 이미 해고사유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고 그에 대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하면 해고통지서에 징계사유를 축약해 기재하는 등 징계사유를 상세하게 기재하지 않았더라도 위 조항에 위반한 해고통지라고 할 수는 없다(대법원 2011. 10. 27. 선고 2011다42324 판결, 대법원 2014. 12. 24. 선고 2012다81609 판결 등 참조). 징계해고의 경우 근로기준법 제27조에 따라 서면으로 통지된 해고사유가 축약되거나 다소 불분명하더라도 징계절차의 소명 과정이나 해고의 정당성을 다투는 국면을 통해 구체화하여 확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것이므로 해고사유의 서면 통지 과정에서까지 그와 같은 수준의 특정을 요구할 것은 아니다. (대법원 2022. 1. 14. 선고 2021두50642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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