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거의 모든 언론은 고질병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한 일, 웃음과 행복을 주는 사례는 거의 외면하고, 부정적이고 패륜적인 사건이나 사고를 중심으로 기사를 작성한다는 불편한 사실입니다. 최근 ‘자살’이라는 단어 대신에 ‘극단 선택’이라는 신조어를 쓰는 등 나름 자정적인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신문의 사회란에는 세상을 비관한 사람들의 비극적인 사연 등 부정적인 기사가 중심입니다. 법과 원칙대로 행해진 사안은 실은 ‘기사꺼리’가 되지는 않는다는 일선 기자들의 푸념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언론이 국민으로 하여금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시각을 조장하게 하는 기사에 매몰된 것은 유감입니다.
○그러는 와중에 사회면에 다음과 같은 미담이 기사화되었습니다. 조회수가 달달한 내용이라 선뜻 기사화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오랜만에 미담이 기사화되어서 흐뭇합니다. 사연인즉, 서울의 한 유명 백화점 엘리베이터에서 쓰러진 60대 남성을 육아 휴직 중인 심장내과 간호사가 천운으로 구조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기사는 지난 이태원 참사 속의 작은 비극, 즉 여성 사고피해자에 대하여 현장에 있던 일련의 남성들이 성추행 고소 등이 무서워 심폐소생술을 기피했다는 사실을 소환합니다. 최근 극심한 젠더갈등으로 이성 간의 심폐소생술은 거의 사장되는 분위기이기에 더욱 미담이 따뜻합니다.
○이 사안이 주목되는 점은 육체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에서는 '웨이관'(圍觀·방관자) 문화라는 것이 있습니다. 직역하면 ‘주위(圍)를 본다(觀)’는 것이지만, 그 본다는 것은 그냥 보기만 한다, 즉 방관한다는 의미입니다. 정확하게는 육체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고 바라만 본다는 의미입니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어려서부터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당위를 배웁니다. 그러나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이리 가라, 저리 가라는 관헌의 강압적인 요구, 성추행의 모함, 폭행가해자로 누명 등 피눈물 나는 사연이 이어지면서 이제 한국에서도 웨이관 문화가 널리 퍼진 것이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유래한 착한 사마리안 고사는 각국에서 이를 실정법으로 이어져야 하는가, 라는 문제로 격렬한 논쟁을 낳았습니다. 의인이 행한 결과에 대하여 민·형사상 법률적 책임의 추궁은 부당하다는 긍정론도 있지만, 어디까지 착한 동기에 의한 행위로 보아야 하고, 그 결과에 대하여 면책을 하는 것은 결국 손해를 입은 자에 대하여 국가가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는 반대론도 뜨거웠습니다. 우리의 실정법 중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응급의료법) 제5조의2’를 흔히 착한 사마리안법이라 부릅니다. 물론 아니라고 반박하는 견해도 있지만, 응급환자에 대한 구조를 장려하기 위하여 개정된 것이기에, 그 취지가 착한 사마리안법과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의 고사와 유사하게 응급의료법의 대상은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를 전제로 합니다. <기사> 속의 60대가 여기에 해당함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면책의 대상이 되는 행위는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여야 하며(응급의료법 제5조의2 본문), 면책이란 민사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에 국한하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에 그칩니다.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행위라도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는 당연히 그 한계로 설정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사> 속의 간호사의 행위의 법률적 성질이 문제가 됩니다. <기사> 속의 구조자는 비록 간호사라 할지라도 ‘개인’자격으로 행한 행위입니다. 본래 간호사는 의료법상의 의료인이기는 하지만, 의료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응급상태라면 의료인으로서가 아니라 자연인으로서의 행위입니다. 따라서 면책여부는 일반시민을 기준으로 하여야 합니다. 젠더갈등이 극심한 최근의 상황에서 이렇게 따뜻한 뉴스가 기사를 도배하기를 기원합니다.
<기사> 서울의 한 백화점 엘리베이터에서 60대 남성이 갑자기 쓰러졌다가 같이 타고 있던 여성의 도움으로 의식을 되찾는 일이 있었다.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한 이 여성은 육아 휴직 중인 심장내과 간호사였다. 29일 SBS 보도에 따르면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 백화점 엘리베이터 안에서 60대 남성 A씨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공개된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A씨가 쓰러지자 함께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여성이 곧바로 A씨를 바닥에 눕힌 뒤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이 여성은 심폐소생술을 약 1분 정도 지속했고, 쓰러졌던 A씨는 이내 의식을 되찾았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1656026?sid=102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의2(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死傷)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傷害)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아니하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 1.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자가 한 응급처치 가. 응급의료종사자 나. 「선원법」 제86조에 따른 선박의 응급처치 담당자, 「119구조ㆍ구급에 관한 법률」제10조에 따른 구급대 등 다른 법령에 따라 응급처치 제공의무를 가진 자 2. 응급의료종사자가 업무수행 중이 아닌 때 본인이 받은 면허 또는 자격의 범위에서 한 응급의료 3. 제1호나목에 따른 응급처치 제공의무를 가진 자가 업무수행 중이 아닌 때에 한 응급처치 |
'자유게시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에 대하여 임대인이 실제 거주를 이유로 갱신거절한 후 그 주택의 인도를 구하는 사건] (0) | 2023.12.16 |
---|---|
<머나 먼 공공부분 민영화의 길> (3) | 2023.12.03 |
[재심대상판결 전후 범행 사이에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범이 성립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 (0) | 2023.11.30 |
[도시관리계획결정의 해제신청에 대한 거부처분 취소를 구하는 사건] (0) | 2023.11.27 |
◇채권자의 파산신청이 민법 제168조 제1호의 시효중단 사유인 재판상 청구에 해당하는지 여부(적극)◇ (0) | 2023.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