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부정적인 속성을 이르는 말로 ‘완장기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관존민비가 수천 년간 지속되어 온 한국사회의 유교탈레반의 부정적 인습에서 발현된 이 ‘완장기질’은 오래 전에 드라마화 되어서 전 국민의 공감을 얻은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완장기질’이 나쁜 것이기는 하지만, 형벌로 처벌하는 것이 온당한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 ‘완장기질’과 공무원의 ‘갑질’은 대동소이한 것인데, 공무원의 권한남용이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공무원에 대한 징계는 별론으로 하고 형벌로 처벌하기는 법리상 난점이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대부분 ‘직권남용죄’로만 기사로 실리지만, 형법죄명표상의 죄명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입니다. 즉, 직권남용과 권리행사방해라는 두 가지 행위의 결합범이 그 본질입니다.
○법률을 떠나 상식적으로도 ‘갑질’을 했다고 하여 범죄가 된다는 것은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막연한 행위가 범죄가 되기에 위헌성이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합헌판결(헌법재판소 2006. 7. 27. 선고 2004헌바46 판결)을 했지만, 소수의견인 권성 헌법재판관의 위헌판결이 법률가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액튼 경의 명언을 들지 않아도 권력이나 권한은 남용의 속성이 있는데, 이러한 일련의 모든 행위를 벌한다면 인민재판이 될 위험성이 농후합니다.
○과거에 대검찰청 공안부장이 권한을 남용하여 공작수사의 차원에서 조폐공사의 파업을 유도했다는 죄목으로 기소가 된 사안에서 대법원은 직권남용권리행사죄에 대하여 무죄판결을 했습니다. 국민들의 소박한 법감정은 ‘나쁜 놈’이라는 시각이 강하지만, 법률적으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구성은 무리가 있습니다. 불법파업은 노동조합의 구체적인 행동을 매개로 비로소 범죄가 되는 것인데, 검찰간부의 전화만으로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파업을 유도한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대검찰청의 공안부장인 피고인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구속될 뻔했던 구 노동쟁의조정법상의 ‘제3자 개입금지’의 입법취지와 유사한 구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제40조‘쟁의간여죄(현재는 삭제)’는 해당된다고 보아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쟁의행위는 전 국민적인 관심사가 되어서 쟁의행위를 지지하거나 비난하는 언동이 뒤따르기 마련인데, 이러한 일련의 행동을 모두 ‘간여’로 보는 것은 형벌의 과잉이자 표현의 자유의 침해입니다.
○가령,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파업을 한다는 뉴스를 보고 이를 지지하거나 비난하는 기사의 댓글이 넘치는 것처럼, 전 국민의 관심사안에 대하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의견의 표명이나 지지성명 또는 비난성명이 뒤따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응원하거나 비난하는 차원에서 ‘간여’하는 것도 선진국 노동조합활동은 이미 보편화된 사안입니다. 프랑스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하여 유명 연예인 등 저명한 인사가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성명을 내는 것은 이미 일상사이며, 프랑스에서는 이것을 이유로 형벌로 처벌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쟁의간여죄’는 현재 삭제되었습니다.
<형법> 제123조(직권남용)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구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40조(노동관계의 지원)① 노동조합과 사용자는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와 관련하여 다음 각호의 자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1. 당해 노동조합이 가입한 산업별 연합단체 또는 총연합단체 2. 당해 사용자가 가입한 사용자단체 3. 당해 노동조합 또는 당해 사용자가 지원을 받기 위하여 행정관청에게 신고한 자 4. 기타 법령에 의하여 정당한 권한을 가진 자 ② 제1항 각호외의 자는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에 간여하거나 이를 조종·선동하여서는 아니된다. ※현재 제40조의 규정은 삭제됨.
【결정요지】 “직권”이란 직무상 권한을, “남용”이란 함부로 쓰거나 본래의 목적으로부터 벗어나 부당하게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문언상 이해되는데, 직권의 내용과 범위가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경우에도 그것이 곧바로 “직권”의 의미 자체의 불명확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법원은 직권남용의 의미에 대해 문언적 의미를 기초로 한 해석기준을 확립하고 있으며 여러 법률에서 이 사건 법률조항에서와 같은 의미로 “직권 남용” 또는 “권한 남용”과 같은 구성요건을 사용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을 뿐 아니라,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는 유형과 태양을 미리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입법기술상으로도 곤란하다. 또한 법률이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의 내면적, 심리적 차원에서의 자유가 아니라 법적인 의미에서의 자유이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이 의미하는 “의무없는 일”이란 “법규범이 의무로 규정하고 있지 않은 일”을 의미하는 것임은 문언 그 자체로 명백하다. 재판관 권 성의 반대의견“직권남용”과 “의무”는 그 의미가 모호하고 광범위하며 추상적인 개념으로 법원의 해석 역시 추상적인 기준만을 제시할 뿐 직권남용의 의미를 파악해 내기가 쉽지 않아, 수사기관이 그 규범 내용을 명확하게 인식하여 어떠한 행위가 이 사건 법률조항에 해당하는지를 일관성 있게 판단하기 어렵게 함으로써 자의적인 해석과 적용의 여지를 남기고 있어, 이른바 정권교체의 경우에 전임 정부에서 활동한 고위 공직자들을 처벌하거나 순수한 정책적 판단이 비판의 대상이 된 경우에 공직자를 상징적으로 처벌하는 데에 이용될 위험성도 있으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반된다. (헌법재판소 2006. 7. 27. 선고 2004헌바46 판결)
【판결요지】 [1] 형법 제123조의 직권남용죄에 있어서 직권남용이란 공무원이 그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직권의 행사에 가탁하여 실질적, 구체적으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하는 경우를 의미하고, 위 죄에 해당하려면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이 의무 없는 일을 하였거나 다른 사람의 구체적인 권리행사가 방해되는 결과가 발생하여야 하며, 또한 그 결과의 발생은 직권남용 행위로 인한 것이어야 한다. [2] 형법 제314조의 위계 또는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성립하려면 업무방해의 결과가 실제로 발생할 것을 요하지 아니하지만 업무방해의 결과를 초래할 위험은 발생하여야 하고, 그 위험의 발생은 위계 또는 위력으로 인한 것이어야 한다. [3]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40조 제2항이 금지하는 '간여'란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의 당사자의 자유롭고 자주적인 의사결정을 저해할 정도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에 관하여 관계 당사자에 대하여 강요, 유도, 조장, 억압 등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간섭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것이고, 그러한 간섭행위가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를 강화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억제하는 것인지를 가리지 아니하며, 다만 사용자나 근로자의 자주적 의사결정을 침해할 정도에 이르지 않는 상담, 조언 등 단순한 조력행위는 여기에 포함되지 아니한다. [4] 대검찰청 공안부장인 피고인이 고등학교 후배인 한국조폐공사 사장에게 위 공사의 쟁의행위 및 구조조정에 관하여 전화통화를 한 것이 직권남용죄와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 않고,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40조 제2항에서 정한 '간여'에는 해당한다고 한 원심의 판단을 수긍한 사례. [5]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40조 제2항 및 제89조 제1호의 각 규정이 말하는'간여'의 의미는 자의를 허용하지 않는 통상의 해석방법에 의하여 누구나 파악할 수 있으므로, 위 법률조항이 죄형법정주의가 요구하는 처벌법규의 명확성원칙에 위반되어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 [6] 대검찰청 공안부의 분장사무에 관한 관련 규정 등에 비추어, 대검찰청 공안부장인 피고인에게 한국조폐공사의 쟁의행위 등에 간여할 수 있는 정당한 권한이 있다거나 그 간여행위가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볼 수 없다고 한 사례. [7]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40조 제2항에는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에 간여하거나 이를 조종·선동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되어 있고, 같은 법 제89조 제1호에는 위 제40조 제2항의 규정에 '위반한 자'는 처벌한다고만 규정되어 있으므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에 간여하였으면 그로 인하여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가 유발, 확대, 과격화, 제압 또는 중단되는 구체적인 결과가 현실적으로 발생하지 아니하였더라도 같은 법 제89조 제1호에 해당한다. (대법원 2005. 4. 15. 선고 2002도3453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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