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절대왕정의 상징인 인물입니다. 그가 쌓은 역사적 업적 외에도 무수히 많은 에피소드로 인하여 아직까지도 루이 14세는 역사서는 물론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등장합니다. 루이 14세는 그 명성 그대로 사후에도 그의 이름이 머나먼 한국에서까지 오르내리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루이 14세 사후 그 사체의 부검입니다. 한반도에서 왕으로 재임했던 사람 중에서 공식적으로 부검의 대상이 된 경우는 없기에, 그의 부검이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프랑스를 포함한 서양 각국에서는 왕은 당연히 부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얼핏 보면 왕이 부검의 대상이 되었기에 왕 이전에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거나 왕위의 격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닙니다. 왕의 사체를 부검하는 것은 범죄로 인하여 왕이 살해당했다면 정통성이 없는 인물이 왕위를 승계하는 불행이 국가에 닥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조선왕조의 경종이나 정조가 사후에 독살설이 돌았던 점을 연상하면 서양의 왕에 대한 부검이 이해가 됩니다. 차승원의 히트작 ‘혈의 누’가 극장에서 상영되기 전까지 조선시대에서도 부검이 행해졌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부검은 역사적으로나 현실에서나 범죄수사와 관련하여 행해졌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22조는 ‘변사자 또는 변사의 의심있는 사체가 있는 때에는 그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검찰청 검사가 검시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여 변사자의 부검은 검경수사권 조정과 무관하게 검사의 권한이자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점을 주목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부검은 사망의 진실을 발견하는 하나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대법원이 ‘사체에 대한 부검이 사망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 실시되고 그 과정에서 사체의 이동·보관에 따른 훼손·변화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그 판단에 오류가 포함될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대법원 2012. 6. 28. 선고 2012도231 판결).’라고 판시하는 의미를 음미해야 합니다.
○유명 연예인 서세원의 사망과 그 원인에 대하여 기사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의학박사이자 방송인, 사업가, 그리고 기자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홍혜걸 박사의 다음 <기사>에서의 멘트가 주목됩니다. 홍혜걸 박사는 서세원의 사망원인에 대한 링거의 가능성을 배제하면서 그 원인으로 지병(기왕증) 또는 심장쪽 돌연사를 지목하고 있습니다. 의학은 과학이기에, 홍혜걸 박사의 주장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서세원 사망의 가설로는 ⓵링거, ②기왕증, ③심장쪽 돌연사로 잠정적으로 설정할 수 있습니다. 홍혜걸 박사는 이 중에서 후2자를 유력한 가설로 설정하는 셈입니다.
○의학적 가설의 검증은 단연 부검이 가장 유력합니다. 물론 부검으로 모든 진실을 규명할 수는 없습니다만, 부검만큼 정확한 검증장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부검은 아직도 거부감이 있습니다. 대법원은 이를 고려하여 ‘우리나라에서 유족들이 죽은 자에 대한 예우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부검을 꺼리는 경향이 있긴 하나, 그렇다고 하여 사망 원인을 밝히려는 증명책임을 다하지 못한 유족에게 부검을 통해 사망 원인이 명확히 밝혀진 경우보다 더 유리하게 사망 원인을 추정할 수는 없으므로, 부검을 하지 않음으로써 생긴 불이익은 유족들이 감수하여야 한다(대법원 2010. 9. 30. 선고 2010다12241,12258 판결).’라고 판시하여 1). 부검은 사망의 진실을 밝히는 중요한 검증수단인 동시에 증명책임을 하나이기에, 2). 이를 거부하는 유족의 불이익은 감수하여야 한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현재 부검은 범죄수사는 물론 보험금청구소송, 의료과실소송, 그리고 산재소송 등에 널리 활용이 됩니다. 진범의 수사는 물론 거액이 오가는 민사소송에 있어서도 사망의 원인이 관건이 된 경우는 밤하늘의 별처럼 많습니다. 그러나 유족의 처지에서 망자의 시신을 해부하는 부검은 엄청난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부검에 대한 거부감은 많이 희석이 되었습니다. 서세원은 시대를 풍미한 연예인이었습니다. 생전에 욕을 많이 먹었지만, 고인이 된 마당에 과도한 비난은 무의미합니다. 다만, 그의 죽음의 원인이 법률적 쟁점이 된다면 부검은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기사> 홍 박사는 한마디로 링거가 사망원인 아닌가라는 일부 추측을 "넌센스다"라고 물리친 뒤 "링거는 체액과 동일한 성분으로 물과 전해질이 기본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필요에 따라 포도당과 아미노산이 들어갈 뿐 어떠한 독성 혹은 알레르기 부작용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령 커피 마시다 죽었다고 해서 커피가 원인이 아니듯 링거는 잘못이 없다”면서 “오염되거나 변질된 것만 아니라면 링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서씨 사망은 아마 지병 등 기왕력(기존 병력) 있거나 심장 쪽 돌연사일 가능성이 높다”라고 추측했다. 서씨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오전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한 병원에서 링거를 맞던 도중 심정지가 왔고 같은 날 오후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평소 지병으로 당뇨를 앓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6/0002133736?sid=102 <형사소송법> 제222조(변사자의 검시) ①변사자 또는 변사의 의심있는 사체가 있는 때에는 그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검찰청 검사가 검시하여야 한다. ②전항의 검시로 범죄의 혐의를 인정하고 긴급을 요할 때에는 영장없이 검증할 수 있다. ③검사는 사법경찰관에게 전2항의 처분을 명할 수 있다. <대법원 판례1> 사망 원인이 분명하지 않아 사망 원인을 둘러싼 다툼이 생길 것으로 예견되는 경우에 망인의 유족이 보험회사 등 상대방에게 사망과 관련한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먼저 부검을 통해 사망 원인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증명 과정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의사의 사체 검안만으로 망인의 사망 원인을 밝힐 수 없었음에도 유족의 반대로 부검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우리나라에서 유족들이 죽은 자에 대한 예우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부검을 꺼리는 경향이 있긴 하나, 그렇다고 하여 사망 원인을 밝히려는 증명책임을 다하지 못한 유족에게 부검을 통해 사망 원인이 명확히 밝혀진 경우보다 더 유리하게 사망 원인을 추정할 수는 없으므로, 부검을 하지 않음으로써 생긴 불이익은 유족들이 감수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0. 9. 30. 선고 2010다12241,12258 판결) <대법원 판례2> 원심은 망인이 급성심장사에 이른 경위로서, 평소 심장에 이상이 없던 상태에서 과로 및 스트레스가 관상동맥질환 등 심장질환을 유발하여 급사에 이른 것으로 본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과로 및 스트레스가 곧바로(심장질환의 유발 없이) 급사의 증상을 유발한 것으로 본 것인지 그 취지가 명확하지 아니하나, 과로 및 스트레스만으로 평소 심장에 이상이 없던 사람에게 급사에 이를 수 있는 어떤 심장질환이 새롭게 유발될 수 있는지, 혹은 과로 및 스트레스만으로 곧바로 급사에 이를 수 있는지, 설사 그러한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위에서 본 정도의 연장근무만으로 심장질환이나 급사의 원인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 있으므로 이 점이 심리 규명되어야 할 것이고, 원심의 취지를 최대한 선해하여 망인이 이미 심장질환을 가지고 있던 중에 과로 및 스트레스가 겹쳐 그 질환을 악화시켜 급사에 이르게 하였다는 취지라고 보더라도, 망인은 평소 별다른 질병이 없는 건강체였다는 것인 데다가 망인의 사후에 부검도 하지 않았던 이 사건에서 망인이 기왕에 심장질환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인정할 수도 없다(원고가 망인의 유족으로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의한 유족급여를 받고자 한다면 적어도 망인의 사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을 실시하도록 하는 등의 부담은 감수했어야 할 것이다). (대법원 2003. 12. 26. 선고 2003두8449 판결) <대법원 판례2> 부검은 사망 이전의 질병 경과나 사망을 초래한 직접 혹은 간접적 요인들을 자세한 관찰 및 검사를 통하여 규명하는 것으로서, 사망원인의 인정 내지 추정을 위하여는 단편적인 개별 소견을 종합하여 최종 사인에 관한 판단에 이르는 추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부검의가 사체에 대한 부검을 실시한 후 어떤 것을 유력한 사망원인으로 지시한다고 하여 그 밖의 다른 사인이 존재할 가능성을 가볍게 배제하여서는 아니 되고, 특히 형사재판에서 부검의의 소견에 주로 의지하여 유죄의 인정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가능한 사망원인을 모두 배제하기 위한 치밀한 논증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더구나 사체에 대한 부검이 사망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 실시되고 그 과정에서 사체의 이동·보관에 따른 훼손·변화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그 판단에 오류가 포함될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 (대법원 2012. 6. 28. 선고 2012도231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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