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이면 고질적인 바가지상혼이 짜증을 유발합니다. 휴가지의 상인은 휴가철에 돈을 벌어서 1년을 산다고 말하지만, 누구는 1년 내내 뼈빠지게 일을 해야 하는데 휴가지의 상인은 왜 몇 달만 벌고도 1년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해명은 하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바가지를 씌우는 것, 즉 가격을 상인이 정하는 것 자체는 자본주의의 룰입니다. 부동산의 가격을 매도인이 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사는 사람은 비싸면 안사면 그만입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가격을 정하는 것이 보장된 것이 자본주의입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재화와 용역을 같이 봅니다. 양자 모두 재화(goods)로 보는 것입니다. 병원(의료법 및 국민건강보험법은 병원을 ‘의료기관’이라 하며, 약국 등을 포함하여 ‘요양기관’이라 합니다. 대부분의 국민은 아프면 ‘병원’에 간다고 하지만 법률적으로는 병원이라는 ‘의료기관’이자 ‘요양기관’에 ‘요양급여’를 받으러 가는 것입니다. 일상언어와 법률용어의 차이입니다)에서 제공하는 용역을 미국에서는 의료서비스(medical service)라고 합니다. 자본주의에 충실한 명칭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요양급여(국민건강보험법(건보법) 제41조)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병원 자체를 법령으로 의료기관, 요양기관이라 규정합니다.
○김춘수 시인의 명시 ‘꽃’에서는 ‘그가 내 이름을 불렀을 때 비로소 나는 꽃이 되었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름은 시를 넘어 법률에서도 중요합니다! 병원을 ‘기관’이라고 건보법 및 의료법에서 규정하는 것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휴가지의 상점을 ‘기관’이라 부르지 않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법전에 농담을 적을 까닭이 없습니다. ‘기관’이라는 것은 요양이 공적 기능으로 수행한다는 점과 아울러 국가의 통제를 예고하는 것입니다. 건보법은 국민과 병원 등 요양기관에 대하여 몇 가지를 강제합니다. 1). 국민을 가입자 또는 피부양자로 지정하여 건강보험체계에 강제하는 것과 2). 국민에게 질병, 부상, 출산 등 건보법상의 보험사고이자 요양기관에서 요양급여를 받을 사유가 발생하면 병원 등 모든 의료기관이 강제적으로 요양급여를 실시하여야 하는 것 등이 그것입니다(강제지정제). 3). 거기에 더하여 요양급여의 대가, 정확히는 급여항목에 해당하는 진료비 등의 비용을 국가가 통제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가격을 자기 마음대로 정하는 휴가지의 바가지상인과 달리 요양기관의 의료서비스라는 재화의 가격통제는 ‘급여항목’이라는 건보법 제41조 제2항이 규정한 가격통제시스템으로 작동됩니다. 급여항목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고시를 통하여 정하는 가격시스템으로 시장의 원리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말하며, 비급여항목은 시장의 원리에 따라 결정하는 가격시스템입니다. 바코드 스캐너를 든 편의점의 점원과 본사의 가격시스템을 이해하면 쉽습니다. 점원은 편의점 상품의 가격을 정할 수 없습니다. 단지 바코드 스캐너로 가격을 확인할 뿐입니다. 급여항목의 비용은 정부라는 편의점 본사가 정한 가격이고 병원이라는 편의점 점원은 바코드로 상품의 가격을 확인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병원을 편의점 점원으로 비유하는 것은 과도합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축적하기 위하여 10여 년을 고생한 의사에 대한 모독이자 실례입니다. 그래서 의사의 자율적이고 재량적인 의학적인 판단을 존중하되, 급여항목비용의 적정성을 통제하는 장치를 마련하였습니다. 의사의 의료적인 판단을 존중하되, 국가가 정한 급여항목의 가격시스템을 통제하는 장치가 바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대법원 판례에서는 ‘심사평가원’)입니다. 의사의 진료행위가 언제나 적정하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의사는 돈을 벌어야 병원을 유지할 수 있기에 과잉진료나 부적절진료의 유혹을 완전하게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의료현장을 봅니다. 환자가 급여항목으로만 진료를 받았다고 가정합니다. 병원 원무과에서는 의사의 진료 및 처방대로 진료비를 받습니다. 그것은 일단 급여항목이라고 보고 잠정적으로 진료비를 수납한 것입니다. 그리고 병원 원무과는 건강보험공단에 급여항목에 대한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합니다. 여기에서 심평원이 등장합니다. 심평원은 ‘심사청구’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하여 그 요양비용청구의 적정성을 판단합니다. 실무에서 심평원이 요양비를 대폭 삭감하거나 아예 부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미 환자와 가정산을 끝낸 병원은 멘붕에 빠집니다. 정산을 이미 끝낸 환자에게 추가진료비를 달라고 하는 것은 당해 환자와의 분쟁을 각오해야 하고 심한 경우에는 병원운영을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다음 대법원 판례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대법원(대법원 2012. 11. 29. 선고 판결)은 심평원의 요양급여비용의 삭감에 대하여 ‘이는 요양기관이 이미 가지고 있는 급여비용청구권을 제한하거나 삭감하는 처분이 아니라 적정한 요양급여비용의 범위를 확인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는 대전제를 설정합니다. 그리하여 ‘요양기관이 국민건강보험공단(보험자)에 대하여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하기 위하여 심사평가원에 심사청구를 하는 경우 그 요양급여가 법령과 고시 등 법규에서 규정한 요양급여의 기준에 합치한다는 점은 이를 청구하는 요양기관이 증명할 책임을 진다.’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병원은 억울합니다. 요양급여비용이라는 돈을 심평원이 일방적으로 에누리하고도 일단 심평원이 행한 행동은 정당하며, 진료행위를 주먹구구로 한 것이 아님에도 적정한 진료임을 증명하라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병원으로서는 자신은 피해자이고 심평원은 가해자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소박한 법감정에도 부합합니다. 그러나 전술한 건강보험의 국가통제시스템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병원과 같은 요양기관의 요양급여청구는 적법한 청구, 그리고 정당한 청구를 전제로 합니다. 병원은 요양급여청구권이라는 채권을 국가에 청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정당한 채권자임을 증명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대충 진료를 하고도 국가에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면 국영보험으로서의 건강보험제도에 반합니다. 따라서 대법원의 결론이 정당합니다. 그러나 심평원의 막무가내가 정당하다는 결론은 아닙니다. 삭감을 하든 부인을 하든 명확한 근거와 이유를 병원에 제시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행정기본법 등 법치행정의 원리를 규정한 헌법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41조(요양급여) ① 가입자와 피부양자의 질병, 부상, 출산 등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요양급여를 실시한다. 1. 진찰ㆍ검사 2. 약제(약제)ㆍ치료재료의 지급 3. 처치ㆍ수술 및 그 밖의 치료 4. 예방ㆍ재활 5. 입원 6. 간호 7. 이송(이송) ② 제1항에 따른 요양급여(이하 "요양급여"라 한다)의 범위(이하 "요양급여대상"이라 한다)는 다음 각 호와 같다. 1. 제1항 각 호의 요양급여(제1항제2호의 약제는 제외한다): 제4항에 따라 보건복지부장관이 비급여대상으로 정한 것을 제외한 일체의 것 2. 제1항제2호의 약제: 제41조의3에 따라 요양급여대상으로 보건복지부장관이 결정하여 고시한 것 ③ 요양급여의 방법ㆍ절차ㆍ범위ㆍ상한 등의 기준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 ④ 보건복지부장관은 제3항에 따라 요양급여의 기준을 정할 때 업무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질환에 대한 치료 등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사항은 요양급여대상에서 제외되는 사항(이하 "비급여대상"이라 한다)으로 정할 수 있다. 제42조(요양기관)① 요양급여(간호와 이송은 제외한다)는 다음 각 호의 요양기관에서 실시한다. 이 경우 보건복지부장관은 공익이나 국가정책에 비추어 요양기관으로 적합하지 아니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의료기관 등은 요양기관에서 제외할 수 있다. <개정 2018.3.27> 1.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 2. 「약사법」에 따라 등록된 약국 3. 「약사법」 제91조에 따라 설립된 한국희귀ㆍ필수의약품센터 4. 「지역보건법」에 따른 보건소ㆍ보건의료원 및 보건지소 5.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설치된 보건진료소 중략 제47조(요양급여비용의 청구와 지급 등) ① 요양기관은 공단에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제2항에 따른 요양급여비용에 대한 심사청구는 공단에 대한 요양급여비용의 청구로 본다. ② 제1항에 따라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하려는 요양기관은 심사평가원에 요양급여비용의 심사청구를 하여야 하며, 심사청구를 받은 심사평가원은 이를 심사한 후 지체 없이 그 내용을 공단과 요양기관에 알려야 한다. ③ 제2항에 따라 심사 내용을 통보받은 공단은 지체 없이 그 내용에 따라 요양급여비용을 요양기관에 지급한다. 이 경우 이미 낸 본인일부부담금이 제2항에 따라 통보된 금액보다 더 많으면 요양기관에 지급할 금액에서 더 많이 낸 금액을 공제하여 해당 가입자에게 지급하여야 한다. ④ 공단은 제3항에 따라 가입자에게 지급하여야 하는 금액을 그 가입자가 내야 하는 보험료와 그 밖에 이 법에 따른 징수금(이하 "보험료등"이라 한다)과 상계(상계)할 수 있다. ⑤ 공단은 심사평가원이 제63조에 따른 요양급여의 적정성을 평가하여 공단에 통보하면 그 평가 결과에 따라 요양급여비용을 가산하거나 감액 조정하여 지급한다. 이 경우 평가 결과에 따라 요양급여비용을 가산하거나 감액하여 지급하는 기준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 ⑥ 요양기관은 제2항에 따른 심사청구를 다음 각 호의 단체가 대행하게 할 수 있다. 1. 「의료법」 제28조제1항에 따른 의사회ㆍ치과의사회ㆍ한의사회ㆍ조산사회 또는 같은 조 제6항에 따라 신고한 각각의 지부 및 분회 2. 「의료법」 제52조에 따른 의료기관 단체 3. 「약사법」 제11조에 따른 약사회 또는 같은 법 제14조에 따라 신고한 지부 및 분회 ⑦ 제1항부터 제6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요양급여비용의 청구ㆍ심사ㆍ지급 등의 방법과 절차에 필요한 사항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 <대법원 판례> [1] 요양급여비용을 지급받을 수 있는 적정한 요양급여는 법령에서 규정한 인정 기준에 맞는 경우에 한정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사평가원’)이 요양기관의 청구비용 중 법령상 기준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고 하여 일부에 대해서만 적정한 요양급여비용으로 인정하는 처분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요양기관이 이미 가지고 있는 급여비용청구권을 제한하거나 삭감하는 처분이 아니라 적정한 요양급여비용의 범위를 확인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요양기관이 국민건강보험공단(보험자)에 대하여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하기 위하여 심사평가원에 심사청구를 하는 경우 그 요양급여가 법령과 고시 등 법규에서 규정한 요양급여의 기준에 합치한다는 점은 이를 청구하는 요양기관이 증명할 책임을 진다. [2]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사평가원’)의 원장이 보건복지부장관의 고시(‘요양급여비용 심사·지급업무 처리기준’)에 따라 진료심사평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한 요양급여비용의 심사기준 또는 심사지침은 심사평가원이 법령에서 정한 요양급여의 인정 기준을 구체적 진료행위에 적용하기 위하여 마련한 내부적 업무처리 기준으로서 행정규칙에 불과하므로, 그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반드시 법령상 인정되는 적정한 요양급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기준이 국민건강보험법령의 목적이나 취지에 비추어 객관적으로 합리성이 없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이를 재판절차에서 요양급여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는 세부기준으로 참작한다고 하여 하등 문제 될 것은 없다. (대법원 2012. 11. 29. 선고 판결) |
'4대보험 > 건강보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사, 은행, 그리고 건보공단의 상계를 둘러싼 법률관계> (0) | 2022.07.30 |
---|---|
<건강보험공단의 근로복지공단에 대한 정산금청구> (0) | 2022.07.30 |
<건강보험의 급여제한과 정지> (0) | 2022.07.13 |
<국민건강보험급여의 제한> (0) | 2022.07.13 |
<실업자와 건강보험의 임의계속가입> (0) | 2022.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