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올드보이들만이 기억을 하겠지만, 과거 TBC는 가장 잘 나가는 민영방송국이었다. 그러나 전두환 신군부가 강제로 KBS로 통합을 시켰다. TBC의 프로그램은 대거 KBS로 이전을 했다. 광고가 두둑하게 붙었던 드라마 ‘달동네’는 광고가 없는 KBS로 이전을 했기에 더욱 시청률을 올릴 수 있었다. 더군다나 수도권에 한정된 방송국인 TBC에서 전국방송으로 이전을 했기에 시청률은 날개를 달았다. 한술 더 떠서 방영도중에 칼라방송까지 더했다. KBS는 노다지를 캔 셈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6-QSMSFca4
위의 인트로는 TBC방영분이다. 광고를 하는 회사는 당시에도 맨 앞 화면에서 등장했는데, 인기프로그램답게 줄줄이 광고가 달려있다. 출연진을 보더라도 호화배역이 눈에 들어온다. 당시에는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이 배우들에게는 가장 큰 인기의 지름길이었기에, 드라마 캐스팅에 목을 메던 시기였다. 영화의 영향력은 아무래도 TV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특히 이 시기는 배우들이 ‘전속제’라 불리는 방송국의 전속출연이 제한되었던 시기였다. 방송국은 슈퍼갑의 힘을 지녔다.
그래서일까? 다음과 같이 근 40년 후에도 럭셔리한 미시로 분하여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한 장미희가 ‘달동네’에서는 충청도 촌 아가씨로 등장을 한다. 괴상하게 충청도 사람들은 어리숙하고, 말도 느리고 어눌한 사람으로 주로 등장하던 시기였는데, 당대의 미녀로 꼽히던 장미희가 충청도 촌 아가씨로 등장하는 기괴한 해프닝이 발생한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6UC-Kk8rE9o
서민들의 애환을 다뤘던 ‘달동네’인지라 출연진 대부분이 서민들로 분장을 했다. 고 추송웅이 ‘똑순이 손잡고 아배 손잡고 학교에 갑니다.’라는 유행어까지 낳았던 대사를 서승현과 주고 받으면서 아역배우로 기염을 토하던 김민희가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당대의 미녀 장미희와 만년 악역배우 백찬기의 사랑이야기가 세인들의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나름 마초 분위기의 백찬기가 장미희를 구박하는 장면에서 전국의 시청자들의 항의가 방송국에 빗발쳤다고 백찬기는 나중에 회고를 했을 정도로 백찬기는 ‘나쁜 남자’의 진수를 보여줬다.
그러나 배우는 역시 배우다! 장미희는 그 럭셔리함을 감추고 촌 아가씨로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해냈다. 실은 ‘똑 사세요!’라는 희대의 명대사를 남긴 ‘육남매’에서도 촌스러움을 듬뿍 보여줬다. 그 시절은 장미희는 정윤희, 유지인과 더불어 ‘트로이카시대’를 구현했다. 미모는 출중하지만 연기력이 떨어지는 정윤희와 대조적으로 장미희는 연기도 최고였다. 유지인도 연기는 출중했지만, 미모는 둘에 비하여 약간 떨어진다는 당대의 평가가 대세였다.
배우도 사람인지라 아무래도 당대의 미녀배우의 상대역으로 출연하는 것은 남배우의 본능적인 바램이라 한다. 그러나 악역전문 백찬기가 미녀를 상대로 멜로연기를 선보인 것은 ‘달동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로 백찬기는 본업(!)인 악역으로 돌아가 조폭, 강도, 동네건달 등을 전전하였다. 물론 인민군으로 분하여 양민을 학살하기도 하였다. ‘달동네’는 고 이낙훈을 위시하여 당대의 유명배우가 무수히 출연을 했다. 그러나 ‘달동네’의 간판은 장미희였다. 늙어가면서도 럭셔리한 장미희가 한창 피는 나이에도 촌스러움 그 자체로 분한 ‘달동네’의 역설이 더욱 장미희라는 배우의 힘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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