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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연예한담

<‘가을비 우산 속’ vs. '가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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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라는 상투적인 말이 있다. 70년대와 80년대는 딱 붙어있는 시대임에도 꽤나 차이가 많은 시대이다. 물론 주관적인 시각이겠지만, 전두환 정부와 박정희 정부의 정책과 시대를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는 시각은 아니라고 본다. 두 시대는 적어도 가요사에서 있어서도 꽤나 큰 차이를 보인다. 요즘 유튜브에 탐닉을 하면서 새삼 깨닫게 된다. 두 시대는 흑백TV시대와 칼라TV시대를 구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70년대에는 일본풍의 트로트풍의 가요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요즘 말하는 발라드곡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시기는 80년대였다. 70년대는 고고장’, ‘캬바레로 춤을 추러 갔지만, 80년대는 디스코텍’, 그리고 나이트클럽으로 춤을 추러갔다. 이렇게 무도장이 변경된 이유는 두 시대의 주류 유행곡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시대의 변화를 방증하기도 한다. 70년대부터 FM라디오에서는 팝을 전문으로 소개하는 팝DJ가 인기를 누렸다. 비록 청취자층이 일부 고교생, 대학생이나 인텔리층에 국한되었지만, 트로트풍에 푹 젖어있는 가요가 이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까닭이다. 빌보드차트 순위에 따른 해적판 음반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최헌이 부른 가을비 우산 속은 트로트풍의 발라드곡이고, 이문세가 부른 가을이 오면80년대에 본격적으로 유행이 시작한 발라드곡이다. 두 노래의 가사 자체는 가을날의 서정을 노래한 것으로 대동소이함에도 음악의 장르에 있어서는 두 시대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최헌과 이문세는 각각 70년대와 80년대에 정상급의 가수로 군림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가을 대표곡인 가을비 우산 속가을이 오면을 들어보면, 두 시대의 격동을 절절히 느낄 수 있다. 70년대에는 유행가의 제목을 영화제목으로 차용할 정도로 유행가의 영향력이 대단했다. ‘가을비 우산 속은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다. 그러나 유행가의 인기에 편승한 것이라 작품성은 영 기대이하였다. 90년대 이후에 최헌의 가을비 우산 속이 방송에서 등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거의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이 가을의 진입식기의 방송음악을 석권했다. 한국식 발라드의 전형이 만발한 80년대이기에, 70년대의 촌스런트로트풍의 발라드곡은 사장되기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21세기 동남아에서 k-pop 댄스곡이 나이트클럽을 석권한 것처럼, 80년대는 팝댄스곡이 나이트클럽을 석권했으며, 팜 댄스곡이 청년들의 음주가무를 즐기는 수단이 되었다. 발라드곡에서는 커다란 진전이 있었지만, 댄스곡에서는 아직 팝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70년대 일부 청년층을 중심으로 음악사대주의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팝에 경도되고 빌보드차트도 줄줄 외는 세태는 확실히 80년대에 와서 줄어들었다. 70년대 당시 신문에는 빌보드차트 순위가 주택복권 당첨번호와 나란히 주요 일간지에 소개가 될 정도였다.

 

이제 21세기에 이르런 BTS가 빌보드차트 순위에 진입을 하는 역사적인 상황이 되어서야 비로소 국민들이 빌보드차트를 볼 정도로 상급문화로서의 팝의 위상은 떨어졌다. 그렇게나 촌스럽던 가요가 이제는 k-pop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널리 퍼지는 것을 보면 정말로 한국인의 역동성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한국가요의 질적 성장은 80년대 발라드곡의 성장에 있음을 간과할 수가 없다. 최헌의 가을비 우산 속과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이 두 노래만으로 많은 것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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