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가가치세법은 ‘재산 가치가 있는 물건 및 권리’를 재화라 정의하고, ‘재화 외에 재산 가치가 있는 모든 역무(役務)와 그 밖의 행위’를 용역이라 정의합니다(부가가치세법 제2조). 그러나 본래 재화(goods)나 용역(service)은 경제학상의 개념으로 널리 기업이 부가가치를 창출한 상품을 말합니다. 그리고 양자를 합하여 재화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변호사의 변론행위나 의사의 진료행위는 모두 경제학상으로는 재화인 셈입니다. 물론 가수의 공연이나 배우의 연기 모두 재화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화하면 뭔가 허전합니다. 심지어는 사기당한 느낌마저 듭니다. 개별적인 사안에 대하여 세심한 분석이 등장할 시점입니다. 당장 변호사의 수임료는 제한이 없는데 반하여, 의사의 진료비는 건강보험으로 해결이 되잖아!, 라는 반론이 소박한 시민의 머리에서 떠오릅니다. 그렇습니다. 변호사의 변론활동은 무보험행위이지만, 의사의 진료행위는 국민건강보험법(건보법)이 지정한 보험사고라면 보험처리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보험처리로 정한 진료비만 지급하면 됩니다. 소박한 국민이라면 이러한 원리를 숨도 쉬지 않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도 그냥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법률적 근거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건보법 제42조 제1항은 ‘요양급여(간호와 이송은 제외한다)는 다음 각 호의 요양기관에서 실시한다. 이 경우 보건복지부장관은 공익이나 국가정책에 비추어 요양기관으로 적합하지 아니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의료기관 등은 요양기관에서 제외할 수 있다.’라고 규정합니다. 단서와 본문을 결합하면 흔히 보는 병원이나 약국 등 진료시설(이를 요양기관이라 합니다)은 국가의 공권력으로 진료가 강제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같은 조 제5항은 ‘제1항ㆍ제2항 및 제4항에 따른 요양기관은 정당한 이유 없이 요양급여를 거부하지 못한다.’라고 아예 못을 박습니다. 이것을 요양기관의 강제지정제라 합니다. 이것의 직접적인 의미는 모든 요양기관은 국가가 지정하는 건강보험시스템으로 편입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의사 등 요양기관의 종사자는 임의로 진료비를 정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전직 대법관 출신 거물 변호사와 로스쿨을 갓 나온 변호사를 동급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수임료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보험의 강제지정제를 채택하면 아무리 노벨의학상급의 명문대 의대 교수라도 동네병원의 의사와 동등한 진료비를 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외국에서 최첨단 의료지식을 습득하여 탁월한 의술을 발휘하더라도 동일한 진료비를 받아야 합니다. 일류의사는 당연히 짜증이 나고 모욕감이 밀려옵니다. 그래서 예전에 유능한 의사들이 헌법재판소에 건강보험 강제지정제를 심판대에 올렸습니다. 결론적으로 헌법재판소는 합헌이라고 판결(헌법재판소 2002. 10. 31. 99헌바76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건강보험 임의지정제와 관련하여 숙제를 남겼습니다.
○건강보험 강제지정제를 채택하더라도 모든 진료행위를 건강보험의 항목으로 편입할 수는 없습니다. 건강보험에 편입되는 항목을 급여항목이라 하고 제외되는 항목을 비급여항목이라 합니다(건보법 제41조 제2항). 그런데 급여항목을 주먹구구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이라는 위임입법으로 정했습니다. 여기에서는 요양행위의 가치를 비교하여 수치화한 것(상대가치점수)을 기준으로 요양급여비용을 정했습니다. 물론 요양급여의 상대가치점수는 요양급여에 소요되는 시간·노력 등 업무량, 인력·시설·장비 등 자원의 양과 요양급여의 위험도를 고려하여 산정한 요양급여의 가치를 각 항목 간에 상대적 점수로 환원한 결과입니다.
○그럼 비급여항목은 의료기관 등이 엿장수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건보법은 업무 또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질환 기타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사항은 요양급여의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제41조 제4항), 그 위임에 따라 위 요양급여기준규칙은 ‘법정 비급여’로서 ‘업무 또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경우, 보험급여시책상 요양급여로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 건강보험급여원리에 부합하지 아니한 경우 등의 진료를 유형화하여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아니하는 진료행위’를 유형화하여 정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부터 제주도까지 전국의 요양기관에서 실시되는 비급여도 요양급여와 마찬가지로 대동소이한 점을 고려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헌법재판소에 분기탱천하여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한 의사들이 등장할 시점입니다. 위헌법률심판제청을 괜히 할 리가 없습니다. 같은 의사가 아니고, 같은 능력의 의사가 아님에도 그들에게 아무런 이익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의학의 발전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첨단의술을 갈고 닦은 의사들에게 혜택을 부여하여야 의학이 발전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리하여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2012. 6. 18. 선고 2010두27639,27646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임의비급여가 합법적인 진료행위가 되는 요건을 법리로 확립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요양기관이 국민건강보험의 틀 밖에서 임의로 비급여 진료행위를 하고 그 비용을 가입자 등으로부터 지급받은 경우라도 ① 그 진료행위 당시 시행되는 관계 법령상 이를 국민건강보험 틀 내의 요양급여대상 또는 비급여대상으로 편입시키거나 관련 요양급여비용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등의 절차가 마련되어 있지 아니한 상황에서, 또는 그 절차가 마련되어 있다 하더라도 비급여 진료행위의 내용 및 시급성과 함께 그 절차의 내용과 이에 소요되는 기간, 그 절차의 진행 과정 등 구체적 사정을 고려해 볼 때 이를 회피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② 그 진료행위가 의학적 안전성과 유효성뿐 아니라 요양급여 인정기준 등을 벗어나 진료하여야 할 의학적 필요성을 갖추었고, ③ 가입자 등에게 미리 그 내용과 비용을 충분히 설명하여 본인 부담으로 진료받는 데 대하여 동의를 받아야 비로소 임의비급여가 유효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만, 위 판례에서 대법원은 ‘요양기관이 임의로 비급여 진료행위를 하고 그 비용을 가입자 등으로부터 지급받더라도 그것을 부당하다고 볼 수 없는 사정은 이를 주장하는 측인 요양기관이 증명하여야 한다.’라고 판시하여 요양기관 등이 증명책임이 있다고 판시를 하였습니다. 이는 항고소송에 있어서 당해 처분의 적법성에 대한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그 처분의 적법을 주장하는 처분청에 있지만, 처분청이 주장하는 당해 처분의 적법성에 관하여 합리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정도로 증명이 있는 경우에는 그 처분은 정당하고, 이와 상반되는 예외적인 사정에 대한 주장과 증명은 상대방에게 그 책임이 돌아간다는 대법원의 기존의 법리(대법원 1984. 7. 24. 선고 84누124 판결, 대법원 2011. 9. 8. 선고 2009두15005 판결 등 참조)와 궤를 같이 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41조(요양급여) ① 가입자와 피부양자의 질병, 부상, 출산 등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요양급여를 실시한다. 1. 진찰ㆍ검사 2. 약제(藥劑)ㆍ치료재료의 지급 3. 처치ㆍ수술 및 그 밖의 치료 4. 예방ㆍ재활 5. 입원 6. 간호 7. 이송(移送) ② 제1항에 따른 요양급여(이하 “요양급여”라 한다)의 범위(이하 “요양급여대상”이라 한다)는 다음 각 호와 같다. 1. 제1항 각 호의 요양급여(제1항제2호의 약제는 제외한다): 제4항에 따라 보건복지부장관이 비급여대상으로 정한 것을 제외한 일체의 것 2. 제1항제2호의 약제: 제41조의3에 따라 요양급여대상으로 보건복지부장관이 결정하여 고시한 것 ③ 요양급여의 방법ㆍ절차ㆍ범위ㆍ상한 등의 기준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 ④ 보건복지부장관은 제3항에 따라 요양급여의 기준을 정할 때 업무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질환에 대한 치료 등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사항은 요양급여대상에서 제외되는 사항(이하 “비급여대상”이라 한다)으로 정할 수 있다. 제42조(요양기관) ① 요양급여(간호와 이송은 제외한다)는 다음 각 호의 요양기관에서 실시한다. 이 경우 보건복지부장관은 공익이나 국가정책에 비추어 요양기관으로 적합하지 아니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의료기관 등은 요양기관에서 제외할 수 있다. 1.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 2. 「약사법」에 따라 등록된 약국 3. 「약사법」 제91조에 따라 설립된 한국희귀ㆍ필수의약품센터 4. 「지역보건법」에 따른 보건소ㆍ보건의료원 및 보건지소 5.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설치된 보건진료소 중략 ⑤ 제1항ㆍ제2항 및 제4항에 따른 요양기관은 정당한 이유 없이 요양급여를 거부하지 못한다. <헌법재판소 판례> 입법자는 우리 현실에서 요양기관의 지정을 계약제로 하는 경우 보험의(保險醫)의 확보가 곤란하여 전 국민에 대한 균등하고 원활한 의료공급을 보장하기 어렵고, 특히 보험의(保險醫)로 구성되는 이익단체가 의료보험수가의 인상 등 그들의 특수이익을 관철하기 위하여 보험자와의 계약체결을 거부하는 등 국민의 의료보험수급권을 위태롭게 하는 집단행동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에서는 계약지정제보다는 강제지정제가 의료보장체계의 기능을 확보하는 데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 2002. 10. 31. 99헌바76판결) <대법원 판례> 국민건강보험을 규율하는 법령은 ① 원칙적으로 모든 진료행위를 요양급여대상으로 삼고, 요양급여의 구체적인 적용기준과 방법은 구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2006. 12. 29. 보건복지부령 제37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요양급여기준규칙’이라 한다)과 보건복지부장관의 고시에 의하도록 하며, ② 거기에 규정되지 아니한 새로운 형태의 진료행위가 이루어지거나 기존 요양급여기준에 불합리한 점이 있으면 구 요양급여기준규칙이 정하는 여러 신청절차를 통하여 요양급여대상으로 포섭하고, ③ 구 요양급여기준규칙 제9조 [별표 2]에 규정된 이른바 법정 비급여 진료행위는 건강보험 적용대상에서 제외하여 그 부분에 한하여 비용 부담을 요양기관과 가입자 등 사이의 사적(사적) 자치에 맡기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요양기관은 법정 비급여 진료행위가 아닌 한 원칙적으로 요양급여의 인정기준에 관한 법령에서 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요양급여를 제공하고, 보험자와 가입자 등으로부터 요양급여비용을 지급받을 때에도 그 산정기준에 관한 법령에서 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요양기관이 그러한 기준과 절차를 위반하거나 초과하여 가입자 등으로부터 요양급여비용을 받은 경우뿐 아니라, 그 기준과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임의로 비급여 진료행위를 하고 가입자와 요양 비급여로 하기로 합의하여 진료비용 등을 가입자 등으로부터 지급받은 경우도 위 기준을 위반하는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구 국민건강보험법(2006. 10. 4. 법률 제803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52조 제1항, 제4항과 제85조 제1항 제1호, 제2항에서 규정한 ‘사위 기타 부당한 방법으로 가입자 등으로부터 요양급여비용을 받거나 가입자 등에게 이를 부담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 (대법원 2012. 6. 18. 선고 2010두27639,27646 전원합의체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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