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병원에 아프거나 다치면 갑니다. 간혹 아이를 낳으려고도 갑니다. 그런데 한국인은 좋든 싫든 건강보험에 강제로 가입되어 있습니다. 건강보험은 공짜가 아닙니다. 누군가는 건강보험료를 내야 합니다. 건강보험료를 납부하는 사람이 가입자가 되며, 얹혀서 건강보험의 혜택을 내는 사람을 피부양자가 됩니다. 아기에게 건강보험료를 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기는 피부양자로서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습니다. 이렇게 건강보험의 가입자와 피부양자에게 생긴 ‘질병, 부상, 출산 등’을 건강보험의 보험사고라고 합니다.
○본래 보험제도는 민간에서 생긴 보험사고에 의한 경제적 위험을 공동분담한다는 차원에서 생겼습니다. 그런데 ‘십시일반’이라는 제도의 특성은 사회보장제도에도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사회보장제도에서도 보험제도의 원리를 차용해서 운영했습니다. 사회보장제도에서 보험의 원리가 도입된 것은 19세기 독일이 기원이었는데, 각국은 경쟁적으로 이것을 도입했습니다. 제도나 법령, 그리고 판결은 저작권이 없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전 세계에 퍼진 사회보장제도 중 단연 으뜸은 건강보험입니다.
○건강보험이 좋은 것은 무과실책임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법문상으로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인 경우에는 건강보험공단이 면책이 되기에 완전한 무과실책임은 아닙니다(국민건강보험법, ‘건보법’ 제53조 제1항). 그러나 자살을 시도하다가 다친 사람처럼 고의 보험사고를 낸 환자도 병원은 외면하지 않습니다. 히포크라테스는 차치하고 오는 손님을 막을 이유가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고의 보험사고에 대하여 엄격한 산재보험과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산재법’ 제37조 제2항). 무과실책임이기에 환자에게 과실상계를 해서 치료비를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사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병원에 오는 환자는 사연이 제각각입니다. 개중에는 다른 사람의 차에 치이거나 두들겨 맞고 병원에 올 수도 있습니다. 즉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출발합니다. 피해자는 건강보험제도에 의하여 건강보험제도를 이용할 수 있고(물론 이 경우에는 자가부담금 치료비는 피해자가 내야 하는 쓰라림이 있습니다),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청구의 일환으로 치료비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해 사고가 교통사고인 경우에는 가해자에게는 자동차보험이 착 달라붙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동차보험회사, 즉 손해보험회사는 가해자를 대위하여 손해를 전보하는 회사입니다.
○같은 ‘보험’이라는 명칭이 들어가 있지만, ‘건강보험’과 ‘손해보험’은 많이 다릅니다. 보험사고처리의 현실에서 전자는 무과실책임이지만, 후자는 과실을 철저하게 따지는 과실책임입니다. 위의 문제로 돌아갑니다. 대부분의 교통사고가 그렇지만, 일단 환자의 치료가 우선이기에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합니다(무과실책임). 그런데 피해자는 건강보험의 혜택도 보고 손해보험사에서도 혜택을 보면 이중이득을 보는 셈입니다(꿩도 먹고 알도 먹으려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한국의 법질서는 헌법부터 이중이득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구상권이라는 제도입니다. 구상은 결국 손해보험회사에게 하는데, 손해보험은 과실책임입니다. 여기에서 문제점이 출발합니다.
○건보법 제58조는 ‘제3자의 행위로 보험급여사유가 생겨 가입자 또는 피부양자에게 보험급여를 한 경우’, 즉 위의 교통사고와 같은 경우에는 건보공단이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규정하여 피해자의 이중이득을 방지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런데 구상권의 범위는 무한정일 수 없습니다. 이중이득의 방지라는 제도의 취지에 맞게 ‘그 급여에 들어간 비용 한도에서’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의 사례에서 손해보험회사가 물어줘야 할 금액 이상으로 청구할 수는 없습니다. 말하자면, 과실상계가 금과옥조인 손해보험회사의 보험급여액 이상으로 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대법원 판례 중 ‘손해의 발생 또는 확대에 피해자의 과실이 경합한 경우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가해자에 대하여 주장할 수 있는 손해배상채권액은 전체 손해배상채권이 아니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대위하여 얻는 손해배상채권, 즉 건강보험 보험급여와 동일한 사유에 의한 손해배상채권에 과실상계를 한 범위 내에서 보험급여에 들어간 비용을 한도로 산정하여야 한다(대법원 2015. 9. 10. 선고 2014다206853 판결).’는 것은 바로 이점에 대한 것입니다. 대법원은 건보법 제58조 소정의 구상권에 대하여 구상을 하더라도 손해배상채권에 과실상계를 한 범위 내에서만 구상이 가능하다는 점을 못을 박았습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3조(급여의 제한) ① 공단은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보험급여를 하지 아니한다. 1.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 그 원인이 있거나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경우 2.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공단이나 요양기관의 요양에 관한 지시에 따르지 아니한 경우 3.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제55조에 따른 문서와 그 밖의 물건의 제출을 거부하거나 질문 또는 진단을 기피한 경우 4. 업무 또는 공무로 생긴 질병ㆍ부상ㆍ재해로 다른 법령에 따른 보험급여나 보상(報償) 또는 보상(補償)을 받게 되는 경우 제58조(구상권) ① 공단은 제3자의 행위로 보험급여사유가 생겨 가입자 또는 피부양자에게 보험급여를 한 경우에는 그 급여에 들어간 비용 한도에서 그 제3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를 얻는다. ② 제1항에 따라 보험급여를 받은 사람이 제3자로부터 이미 손해배상을 받은 경우에는 공단은 그 배상액 한도에서 보험급여를 하지 아니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업무상의 재해의 인정 기준) ① 근로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로 부상ㆍ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하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 다만,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相當因果關係)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중략 ② 근로자의 고의ㆍ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ㆍ질병ㆍ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 다만, 그 부상ㆍ질병ㆍ장해 또는 사망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낮아진 상태에서 한 행위로 발생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으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 <민법> 제396조(과실상계) 채무불이행에 관하여 채권자에게 과실이 있는 때에는 법원은 손해배상의 책임 및 그 금액을 정함에 이를 참작하여야 한다. <대법원 판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불법행위의 피해자에게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른 건강보험(이하 ‘건강보험’이라고 한다) 보험급여를 한 경우 그 급여에 들어간 비용의 한도에서 피해자의 가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을 얻는다(국민건강보험법 제58조 제1항, 2011. 12. 31. 법률 제11141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에는 제53조 제1항). 이는 건강보험 보험급여를 받은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음으로써 이중의 이익을 얻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므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피해자를 대위하여 얻는 손해배상채권은 피해자의 전체 손해배상채권 중 건강보험 보험급여와 동일한 사유에 의한 손해배상채권으로 한정된다. 따라서 손해의 발생 또는 확대에 피해자의 과실이 경합한 경우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가해자에 대하여 주장할 수 있는 손해배상채권액은 전체 손해배상채권이 아니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대위하여 얻는 손해배상채권, 즉 건강보험 보험급여와 동일한 사유에 의한 손해배상채권에 과실상계를 한 범위 내에서 보험급여에 들어간 비용을 한도로 산정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5. 9. 10. 선고 2014다206853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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