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급자의 반란인가, 직장 내 괴롭힘인가>

○요즘에는 의상비 등 제작비의 압박으로 사극 자체가 제작이 어려운 환경입니다만, 과 1980년대까지는 사극이 활발하게 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말이 좋아 사극이지 거의 대부분 조선시대만을 다뤘습니다. 조선시대, 그리고 궁중암투가 절대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사극작가 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로 소수에 불과했다는 점 외에 방송국 내 스튜디오에서 대부분을 촬영했고, 야외촬영이라 해봐야 대부분 민속촌에서 퉁치는 등 제작이 손쉬웠다는 점에 기인했습니다.

 

○제가 어려서 꼭 보고 싶었던 것이 고려시대 민란인 ‘만적의 난’이었습니다. 헐리우드 유명배우 마이클 더글라스의 아버지인 커크 더글라스의 ‘스파르타쿠스의 난’에 꽂힌 나머지 한국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민란인 ‘만적의 난’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시황제의 천하통일을 와해시킨 진승의 그 유명한 말, ‘왕후장상 영유종호(王侯將相 寧有種乎)’를 소환하여 하극상이라는 기치를 내세운 만적의 거사는 그 자체로 드라마틱합니다. 성(姓)도 없었던 노비의 신분으로 혁명을 꿈꿨던 만적의 인생은 그 어떤 인생보다 그 자체가 드라마틱하기도 합니다.

 

○만적의 난이 발발한 고려에서는 물론 조선에서도 유교는 치국의 이념이었습니다. 유교식 서열주의가 치국에 유리했기 때문에 당연히 집권층이 적극 장려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만적의 난이 실패한 이유 중의 하나가 평민의 옹호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문벌귀족과 신흥무신귀족에게 억압받는 것은 거부해도 만적으로 상징이 되는 너희 노비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지닌 대다수 평민으로부터는 열화와 같은지지와 협조를 얻지 못한 이유가 큽니다. 그만큼 한반도에서는 하극상이라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현실입니다. ‘꼰대’라는 말 자체가 위계질서를 전제로 생긴 말입니다.

 

○그러는 와중에 최근 하급자가 상급자를 대상으로 한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함을 전제로 하는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이 나왔습니다. 정말로 이례적이고 또 이례적인 사건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의 절대다수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하기 때문입니다. 실은 그것이 상식수준으로 시민에게 각인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당초에 직장 내 괴롭힘을 입법한 이유가 상급자 또는 사업주의 횡포를 막으려고 제정되었기도 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은 법률적으로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서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가하는 행위로 직장 내 괴롭힘 자체는 가능하지만, 유교탈레반으로까지 불리는 한국사회에서는 하극상에 준하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다음 <기사>에 등장하는 사안 자체는 직장 내 괴롭힘을 행한 근로자에 대한 징계처분이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절대 다수를 점하는 직장 내 괴롭힘의 현실적인 사안인 상급자 또는 사업주와 그 가족이 가해행위의 주체가 된 사안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안에서 피해자가 되는 하급자가 가해자가 되어서 상급자를 괴롭힌 행위 때문에 징계를 받았으며, 졸지에 가해자는 ‘2개월 출근 정지’ 수준의 징계로도 언론에 뜬 사연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징계대상자인 하급자를 중심으로 무려 19명씩이나 되는 가해자무리들이 상급자이자 그룹장인 피해자에게 사임을 요구하는 피케팅을 하고 현수막을 걸고 홍보물을 배포하고, 연판장까지 작성했습니다. 이로 인해 상급자는 신체와 정신적 고통으로 치료를 받기까지 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하급자의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을 구성합니다.

 

<기사> 중앙노동위가 직급은 낮아도 다수의 힘으로 상급자를 상대로 사임 요구 피켓팅을 벌인 하급자들의 행동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했다. 24일 중노위는 상급자의 사임을 요구하며 피켓팅·현수막 거치·홍보물 배포 등을 한 A 씨가 회사로부터 ‘출근정지 2개월’ 처분을 받은 후 중노위에 낸 부당징계 재심신청을 기각하며 “업무상 적정 범위를 벗어난 일련의 행위로 인해 부서장이 신체적·정신적 고통으로 치료를 받고 근무환경이 악화됐다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A 씨 등은 상급자를 상대로 지속적인 사임 요구 피켓팅을 벌였고, 사측은 이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해 6명에 대해선 정직 처분을, 나머지 13명에 대해선 감봉과 주의 처분을 내렸다. 이에 A 씨는 부당 징계라고 주장하며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냈으나 기각됐고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1/0002552898?sid=102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하 “직장 내 괴롭힘”이라 한다)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직장 내 하급자이자 후배들이 선배이자 상급자를 ‘왕따’시키고 ‘꼽’을 준 사안이 바로 이 사안의 핵심입니다. 하극상의 사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사안은 다수가 똘똘 뭉쳐서 1인에게 가한 직장 내 괴롭힘을 구성하는 사안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은 당연히 징계책임의 대상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각종 민· 형사상 책임을 지게 되기까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