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패기, 능력, 도전
○기업의 채용과정에서 지원자가 자기소개서를 제출하면서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들입니다. 물론 요즘에는 역효과가 난다고 하여 자제를 하는 지원자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광범위하게 애용(!)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자기소개서를 작성한 지원자들을 채용하면(지원자의 자기소개 내용이 맞다고 가정하고!) 기업은 금새 혁신을 주도하여 애플을 능가할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소개서를 보통 자소서라 줄여서 말하는데, 거짓말과 과장이 너무나 많아서 자소서를 자소설(?)이라는 멸칭으로 부르는 것은 이제 일상입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채용갑질이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습니다. 맞습니다. 악질 사용자가 현실에서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언론에서는 악질 지원자에 대하여는 상세하게 다루고 있지 아니합니다. ‘채용갑질’이 현존하는 사실이지만, 동시에 ‘역채용갑질’도 분명 현존하는 사실입니다. 당장 맨 처음에 소개한 자소설을 작성한 사람들은 능력 이전에 도덕성에 구멍이 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열정, 패기, 능력, 도전 등과 같은 추상적인 평가는 기업의 인력채용에서 아무런 검증장치도 없기에 기업으로서는 당초부터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점도 유의하여야 합니다.
○지금은 KBO(한국야구위원회)의 총재로 재직 중인 허구연은 해설위원 시절에 자비로 미국에 야구유학(코치연수)을 갔다왔을 정도로 야구열정이 뜨거운 분입니다. 허구연이 미국 연수를 하면서 미국의 야구지도자들이 중시하는 것이 경력(career)이라는 것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는 것을 훗날 밝혔습니다. 그러나 경력은 야구에서만 중요시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사회 전체가 경력을 중시합니다. 특히 인사문제(personnel problem)에 있어서 경력은 학력과 더불어 중요한 평가지표입니다. 열정이니 패기니 하는 추상적인 평가지표와는 달리 객관적인 평가가 어느 정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마트에서 빵을 하나 사려고 해도 대부분의 소비자는 가격 등을 포함하여 많은 비교요소를 가지고 다른 빵과 비교를 하고 인터넷 검색으로 평판도 찾아봅니다. 하물며 노동시장에서의 수요자인 기업이 값비싼 노동력을 자소설만으로 채용을 하고 근무를 시키고, 나아가 근로의 대가인 임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책임합니다. 사용자가 노동력을 제공받으려면 임금 외에도 연차휴가, 휴게시간, 각종 가산수당, 유급휴일 등 추가적인 비용을 지급하여야 합니다. 경제학적으로 노동력의 제공은 ‘용역’이라 하고 빵은 ‘재화’라고 구분을 하지만, 양자는 통합적으로 ‘재화’의 범주로 묶어서 평가하는 것이 현대 경제학의 기본입니다. 그렇습니다. 노동력은 결국은 돈입니다.
○안철수 의원은 ‘정인이 사건’에 대하여 분노를 표하면서 ‘악마는 어디에나 있는데, 서울시가 방치했다.’고 정치공세를 편 적이 있습니다. 악마는 어디에나 있다는 것은 실은 서양에서 흔히 쓰이는 관용적인 표현입니다. 그래서인지 ‘The Devil All the Time’라는 제목의 영화까지 등장했습니다. 악마의 탈을 쓴 사용자가 있다면, 악마의 탈을 쓴 근로자, 그리고 입사지원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노동법적 시각으로도 다음의 <기사>는 대단히 편향적입니다. 본래 법률은 인간의 본성에는 악마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제정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률은 인간은 본래 악하다는 성악설이 바탕에 깔려 있는 악마의 기술이기도 합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3개월 수습약정 후에 기간 만료 후에 당연히 정규직으로 채용하여야 한다는 뉘앙스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악마까지는 아니라도 향후 정규직으로 채용이 곤란한 능력과 품성을 지닌 수습근로자를 울며 겨자를 먹는 심정으로 채용이 강제하는 것이 노동법상 정의는 아닙니다. 소박한 국민상식에도 반합니다. 이혼까지도 가능한 세상에서 사용자가 수습계약을 통하여 근로자를 거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지 못하게 되면, 사용자는 채용 자체를 기피하게 되고 나아가 사회 전체적으로는 자본주의의 근간인 근로계약의 본질을 부정하는 단계가 됩니다. 자본주의경제는 인력과 같은 노동요소와 자본요소의 합치가 생산력의 기초임을 전제로 자유로운 투입이 가능한 사회구조를 토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근로기준법 자체도 ‘수습’이라는 문구를 사용하여 수습제도의 현실적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며(제77조), 또한 최저임금법도 3개월 간 최저임금의 예외적 사유를 규정하면서 간접적로나마 수습제도 자체는 허용하고 있습니다(제5조 제2항). 무엇보다도 신원보증법은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금전적 손해를 가할 수 있다는 전제로 신원보증계약을 허용하고 있으며(제2조), 현재 보증보험상품 중에서 당연히 신원보증보험상품이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신원보증보험은 수습제도의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이고, 악마인 (수습)근로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규직으로 채용공고를 보고 입사했습니다. 수습 3개월 동안은 계약직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수습이 끝나면 정규직 계약서를 다시 작성한다고 해서 동의했는데, 기간 만료로 해고당했습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 중인데 채용절차법 위반으로 신고 가능할까요?" 정부가 사용자 측의 채용 '갑질'을 근절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또 채용절차법 개정도 함께 이뤄져야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26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고용노동부가 2월부터 운영 중인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의 신고 대상에는 사용자의 채용 갑질에 대한 내용이 어디에도 없다"며 "정부가 사용자의 채용 갑질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문제 삼은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의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를 보면 '노동조합의 불법·부당 행위' 중 '고용세습, 채용 강요 등 위법한 단체협약 체결을 강요하는 행위'를 신고 대상 사례로 제시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21/0006652075?sid=102 <신원보증법> 제2조 (정의)이 법에서 “신원보증계약”이란 피용자(被傭者)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책임 있는 사유로 사용자(使用者)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 그 손해를 배상할 채무를 부담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을 말한다. <근로기준법> 제77조(기능 습득자의 보호)사용자는 양성공, 수습, 그 밖의 명칭을 불문하고 기능의 습득을 목적으로 하는 근로자를 혹사하거나 가사, 그 밖의 기능 습득과 관계없는 업무에 종사시키지 못한다. <최저임금법> 제5조(최저임금액)①최저임금액(최저임금으로 정한 금액을 말한다. 이하 같다)은 시간ㆍ일(日)ㆍ주(週) 또는 월(月)을 단위로 하여 정한다. 이 경우 일ㆍ주 또는 월을 단위로 하여최저임금액을 정할 때에는 시간급(時間給)으로도 표시하여야 한다. ② 1년 이상의 기간을 정하여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수습 중에 있는 근로자로서 수습을 시작한 날부터 3개월 이내인 사람에 대하여는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제1항에 따른최저임금액과 다른 금액으로최저임금액을 정할 수 있다. 다만, 단순노무업무로고용노동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한직종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제외한다. ③ 임금이 통상적으로 도급제나 그 밖에 이와 비슷한 형태로 정하여져 있는 경우로서 제1항에 따라최저임금액을 정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면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최저임금액을 따로 정할 수 있다. |
○다음 <기사>의 말미에서는 사용자에게 채용갑질을 방지하기 위한 각종 법적 장치의 제정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규제를 하면 할수록 규제의 역설이 발동합니다. 더욱 채용을 기피하게 됩니다. 노동력을 제공 받으려고 채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전을 모시는 상황이 되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사용자도 근로자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입사지원자도 언젠가는 사용자가 됩니다. 김건모의 ‘핑계’라는 불후의 대히트곡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게 그런 핑계대지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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