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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Trivia Quiz, 그리고 송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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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via Quiz

 

위 트리비아 퀴즈라는 말을 보고 미국 프로야구(MLB) 중계도중에 등장하는 퀴즈를 연상하는 분이라면 미국야국에 관심이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난이도가 높은 이 퀴즈의 정답을 즉석에서 말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MLB에 대하여는 덕후수준입니다.

 

트리비아 퀴즈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알게 된 것은 대학 마지막 학기인 1993년에 자취방에서 심심풀이로 봤던 월드시리즈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 간의 경기 도중에 등장했던 트리비아 퀴즈였습니다. 수십 년 전의 선수와 그 기록, 그리고 경기장 등 MLB를 빠삭하게 이해하지 않고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덕후수준의 문제를 보고 라이트팬에 불과했던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야구는 한국야구와는 거리가 먼 그들만의 리그였기도 했지만, 외국선수들의 상세한 기록을 즉석에서 빠삭하게 풀어낼 수 있는 실력이 한국에서 얼마나 되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실제로도 그때까지 한국야구에 대해서는 거의 백과사전 수준으로 읊어대는 사람은 봤지만, 미국야구에 대하여 백과수준 수준으로 읊어대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실은 당시에 중계는커녕 언론에서도 MLB는 진기명기가 아닌 이상 거의 다루지도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이후 박찬호가 MLB에 진출하면서 비로소 MLB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설명하는 정도의, 즉 수박의 겉을 핥는 수준의 기사만이 게재되었습니다. 본격적인 MLB기사라고 해봐야 박찬호가 MLB에 진출하면서 비로소 등장한 셈입니다. 물론 요즘도 MLB 자체가 무척이나 덕후스러운취미이기는 합니다. 아무튼 그때까지 그렇게나 궁금했던 트리비아 퀴즈를 술술 푸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1998년이 되어서 지금은 사라진 iTV에서 박찬호 중계의 해설을 했던 송재우를 만났고 트리비아 퀴즈를 즉석에서 풀어내는 괴력의 내공을 지닌 사람을 마침내 만났습니다. 송재우 이전까지는 대쓰요하는 사투리의 허구연과 야구 몰라요!’가 트레이드 마크인 만담과 훈계콤보의 고 하일성이 야구해설의 대명사로 군림했던 시대였기에, 생소한 MLB, 거기에서 더 나아가, 트리비아 퀴즈를 술술 풀어내는 진정한 덕후이자 내공이 충만한 고수를 만난 것입니다.

 

송재우에 대한 신선한 충격은 문화충격으로 이어졌습니다. MLB중계 도중 등장하는 셀럽들에 대한 시시콜콜한 에피소드를 줄줄 읊어대는 것에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MLB 현지중계의 오랜 관행이 있는데, 그것은 유명인(notables)이나 셀럽이 등장하면 방송국 카메라가 클로즈업을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1997KBS가 박찬호 중계를 하면서 고 하일성은 트리비아 퀴즈는 물론 셀럽에 대하여 한 마디도 못했는데, 송재우는 마치 보학에 정통한 조선시대의 선비가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읊어대듯이 술술 읊어대는 것이었습니다. 야구중계를 떠나 한국스포츠중계에서 이렇게 미국 현지방송에서 등장하는 트리비아퀴즈, 그리고 셀럽에 대한 에프소드를 읊어대는 사람은 송재우가 처음이었습니다.

 

송재우는 미국에 유학을 가면서 영어에 능통한 상태에서 MLB에 푹 빠져서 덕후의 지경에 이른 사람입니다. 속칭 덕업일치(덕후와 직업의 일치)’에 이른 사람입니다. 직업이 아니면서 MLB에 정통하다는 것은 덕후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미국 야구장의 음식이나 명물, 주차장에서의 주차, 야구장 가는 길 등 미국 현지사정에 대한 정통한 지식은 미국에서 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내용입니다. 송재우는 이러한 문제에서도 완벽했습니다. 그래서 긴가민가하는 팬들 사이에서 MLB해설은 송재우라는 등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송재우는 수십 년간 선수출신이 아니면 해설을 할 수 없다는 철칙을 깬 사람이기도 합니다.

 

송재우가 일으킨 나비효과는 대단했습니다. 세이버매트리션이라는 것을 중계도중에 상세하게 해설을 하면서 과거 타율과 승수, 홈런 등의 기록 외에 선수와 경기에 대한 새로운 지표를 소개하면서 시청자와 팬들을 열광하게 하였습니다. 물론 송재우의 이러한 팩트와 통계, 그리고 현지사정에 정통한 새로운 해설이 만담으로 일관하는 고 하일성 류의 해설의 몰락을 재촉하였습니다. 고 하일성의 불행한 죽음과 송재우를 필두로 한 일련의 비선수출신 전문가의 등장은 무관하지 않습니다. 사실 MLBNBA, NFL, 그리고 PL 등 스포츠는 대단히 덕후스러운 영역이기도 하기에, 깊이 공부를 하지 않고 선수시절의 경력만으로 해설하는 것은 무리가 따릅니다.

 

이제 손흥민 중계의 해설은 비선수출신 장지현이나 한준희를 떠올리고, MLB도 역시 비선수출신인 송재우, 김형준을 떠올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스포츠해설도 경쟁이 치열한 시장입니다. 이들이 해설시장에서 강자로 군림하고 선수출신들이 외면을 받는 것은 시청자들의 수요가 어디에 몰렸는가, 어디를 선호하는가 등의 사정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송재우가 이러한 거대한 변화를 전부 다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송재우의 힘이 절대적이라는 것 자체는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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