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환은 복싱 선수라는 한 개인을 넘어 1970년대 한국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헝그리스포츠의 대명사로 당시 인기절정을 누린 프로복싱의 세계챔피언에 등극하면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멘트로 온 국민에게 감동을 주었던 인물입니다. 가난한 1970년대 한국에서 국민스포츠의 위상을 과시했던 프로복싱에서 세계챔피언을 따내면서 국민적 자부심을 안겨 준 인물입니다. 당시 세계타이틀이 걸린 복싱대회라도 열리면 동네 다방은 아재들로 북적일 정도로 프로복싱의 위상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아재들의 으쌰, 으쌰! 하는 응원소리에 동네가 떠나갈 듯했습니다. 지금이야 월드컵 축구가 아닌 다음에야 국민응원이 없지만, 당시에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프로복싱은 단순히 스포츠를 넘어 국뽕을 세우는 제전이었습니다.
TV를 통해서 봤던 세계복싱의 강타자들은 확실히 펀치가 강했고, 맷집도 뛰어났습니다. 무엇보다도 민첩함이 느껴졌습니다. 홍수환, 박찬희, 염동균, 김태식 등 경량급의 발빠른 복서들의 펀치도 피해가는 그들의 스피드에 놀랐고, 툭툭 넌지는 잽의 위력도 한국 선수들의 턱이 움찔하는 장면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넓고 강자는 많다는 냉정한 현실을 파악하는 시간은 세계타이틀전을 보면 금새 확인이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세계타이틀전은 국민의 갈망을 담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계챔피언이 그렇게나 어렵기에 세계챔피언의 등극은 스포츠국뽕을 낳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스포츠국뽕 시대의 정점은 바로 홍수환이었습니다. 생중계되는 TV화면을 보며 홍수환을 응원하면서 펀치를 뻗는 그에게 온 국민의 정기를 불어넣는 퍼포먼스가 행해졌습니다. 그야말로 홍수환은 국민영웅 그 자체였습니다. 유신정권의 서슬이 퍼런 시대였지만, 적어도 홍수환을 응원하는 시간만큼은 온 국민이 단결을 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국민영웅 부인 옥희를 폭행했던 홍수환의 비위사실은 스리슬쩍 넘어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아무튼 그 대단했던 홍수환을 KO시킨 복서가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알폰소 사모라입니다.
홍수환은 사모라에게 지고,
사모라는 사라테에게 지고,
사라테는 고메스에게 지고,
고메스는 산체스에게 지고,
산체스는 교통사고에 지고.
https://www.youtube.com/watch?v=5X6QTa6Fy_k&t=834s
당시에 홍수환 때문에 이런 유행어가 등장을 했습니다. 마치 먹이사슬같은 승패의 연결을 이용하여 생긴 유행어는 당시 국민스포츠로서 복싱의 위상과 인기를 방증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 대단했던 알폰소 사모라와 카를로스 사라테는 빅매치를 벌였습니다. 생중계를 봤던 기억은 없고 녹화중계를 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기는 하지만, 위 경기 자체는 본 기억이 또렷합니다. 홍수환을 이긴 것도 이긴 것이지만, 당시 시청률이 보장되는 빅매치이기에 중계는 당연했기 때문입니다.
사라테는 동급에서는 장신의 복서였습니다. 원, 투 스트레이트가 비수처럼 꽂히던 기억이 지금 보니까 되살아납니다. 인파이터와 아웃복싱을 겸비하면서 스트레이트로 상대의 스태미나를 녹이고 스피드를 죽이는 테크닉이 대단합니다. 사모라는 저돌적인 양훅이 인상적입니다. 둘의 대결은 스트레이트와 훅의 대결입니다. 물론 사라테는 훅도 일품이기는 하지만, 상대의 초반 기세를 꺽는 주무기는 단연 스트레이트입니다. 복서들이 실제 느끼는 위력이 스트레이트가 더 크다는 답변이 있습니다. 그것은 스트레이트는 안면 뒤로 충격이 흡수되기에 안면 좌우로 충격이 분산되는 훅과 대조적으로 충격의 강도가 더 크다는 설명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무튼 사라테의 누적된 스트레이트에 사모라는 굴욕적인 KO를 당했습니다. 특히 이 경기에서 타월을 던지는 동작이 경기를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그 많은 KO펀치를 날렸던 사모라가, 특히 홍수환을 갖고 놀다시피 펀치를 날렸던 사모라의 처참한 패배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복싱의 상대성이란 말로 해설한 고 오일룡 해설위원의 풀이도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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