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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6.25의 숨은 무기상잔 : 일제의 아리사카 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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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개발사는 굴욕과 극복의 역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미국의 포드에게 갑질의 진수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다가 일본의 미쯔비시에게 의탁을 하게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내연기관 자동차의 핵심은 엔진입니다. 현대자동차는 그 시절에는 엔진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미쯔비시에서 한물 간 데보네어를 들여 와서 구형 그랜저(일명 각그랜저’)를 들여와서 대박을 냈고, 같은 미쯔비시의 파제로를 라이센스생산한 갤로퍼로 또 다시 대박을 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현대자동차는 자신의 생명줄이었던 미쯔비시를 저 멀리 앞서 나갔습니다.

 

무기 분야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졌습니다. 이미 100년 전에 항공모함을 건조했던 일본의 그것보다 한국의 무기가 우수한 사례가 많습니다. 한국인의 DNA 자체는 우수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우매함 때문에 해방 전까지도 한국은 총알 하나도 만들지 못하는 무기후진국이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민족의 비극인 6.25가 발발했습니다. 민족상잔의 비극이라 하여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6.25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전장에서 불을 뿜는 무기에서도 동족상잔이 발발했다는 점, 그리고 그 무기가 일제강점기의 무기였다는 점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해방이 되면서 무려 6만정이나 되는 일제의 아리사카소총(아리사카소총은 시리즈로 나왔습니다. 그 중 해방이후에 잔존한 것은 대부분 아리사카의 최신형인 아리사카99식이었습니다)은 당연히 신탁통치를 시행한 미군과 소련군이 전리품으로 접수를 했습니다. 미군이 2차대전에서 쓴 M1개런드소총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아리사카소총을 미군이 본국으로 들여올 리가 만무했습니다. 당연히 해방이후에 창설된 국군과 경찰이 재활용(!)을 했습니다. 소련군은 인민군이 쓰라고 김일성에게 인심(?)을 베풀었습니다. 지금까지 따발총(Ppsh-41, 일명 뻬뻬샤’)으로 불리는 기관단총도 더불어 베풀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CbWkSSJeqs

 

결국 일제강점기의 아리사카소총이 남북이 사이좋게(?) 나눠가진 셈입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6.25가 터지자 남북은 서로에게 총을 겨눴는데, 문제의 아리사카소총으로 총구를 겨눈 것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인민군 대부분이 따발총을 사용한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일제가 남긴 6만점이나 되는 아리사카소총이 하늘로 솟거나 땅으로 꺼질 리가 없습니다. 당연히 어제의 용사들인 아리사카소총은 재활용이 되었습니다.

 

전쟁이 장기전으로 되면서 국군의 손에는 차츰 미군의 M1개런드소총이나 M1카빈소총, M3그리스건 등이 등장했습니다. 물론 인민군의 손에는 소련의 모신나강소총이나 중공군의 봉천 기관단총 등이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북한이나 남한이나 일제의 아리사카소총을 사용한 것은 크게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쪽팔림 때문입니다. 해방이 되었는데, 일제강점기의 유산인 아리사카소총을 쓴다는 것은 서로 쪽이 팔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블랙코미디수준입니다. 그러나 숨긴다고 사실이 감춰지지는 아니합니다. 아리사카소총은 6.25 동족상잔의 와중에 남과 북 모두의 슬픈 흑역사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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