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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연예한담

<정수라의 ‘난 너에게’ : 표절과 리메이크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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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왜 그렇게 부르나 이해가 안 가는 말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유명 만화가도 서슴없이 하는 말인 대본소(貸本所, 카시혼쇼, かしほんし)’라는 것도 포함됩니다. ‘대본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드라마 대본할 때의 대본(臺本)’을 연상합니다. 그래서 대본소하면 무슨 드라마 대본을 대여하는 것으로 오해하기가 딱입니다.

 

그런데 대본소는 순수 일본어로 책(, , ほん)을 빌리는 곳, 즉 만화가게를 뜻합니다. 왜 예전부터 대본소라고 불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있어보이려 한다면, ‘만화대여점이라 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일상에서 쓰이지 않는 일본식 한자어를 고집했는지 아리송했습니다. 신병훈련소에서도 유사한 경험을 했습니다. ‘총기수입이라는 훈련소 조교의 말을 도무지 몰라서 물으니 자기도 모르면서 화를 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수입(手入)은 테이레(ていれ手入)라고 부르는 순수 일본어로 손질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총기손질하면 될 것을 일본식 한자인 수입을 한글로 그냥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1980년대 만화가게에서 독보적인 존재는 단연 이현세였습니다. 이현세가 그렸다하면 무조건 베스트셀러였습니다. 헐리우드나 한국이나 만화나 소설이 뜨면 자동적으로 영화화되는 수순입니다. 이현세의 작품은 무수히 영화 또는 드라마로 작업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그의 대표작인 공포의 외인구단이 영화화되는 것은 거의 해가 동쪽에서 뜨듯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잘 어울리지 않는 최재성, 이보희 커플이 주연으로 분하여 영화로도 꽤나 히트를 했습니다. 영화가 뜨면 덩달아서 주제가, ost도 뜨기 마련입니다. 문제의 ost가 정수라의 난 너에게입니다.

 

정수라는 이 주제가로 여기서 그리고 저기서 각종 상을 휩쓸었습니다. 아직 뽕끼, 즉 트로트가 바탕이 된 대중가요가 일상적인 한국현실에서 팝송분위기 물씬 나는 감성코드 만점의 정수라의 주제가에 저는 완전히 꽂혔습니다. 실은 저는 정수라가 1970년대 롯데 티나콘CM’을 부를 때부터 꽂혔습니다. 정수라가 히트시킨 많은 노래, ‘, 대한민국!’, ‘환희’, ‘도시의 거리’, ‘바람이었나’, ‘어부의 딸등 대부분의 노래의 가사를 외울 정도로 정수라의 노래에 푹 꽂혔습니다. ‘난 너에게도 당연히 심취했습니다. ‘난 너에게는 당시 대중가요의 주류와는 판이한 전개로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고, 고급스러움이 묻어나는 곡이라 조금 이질적인 감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좋으면 닥치고 듣는 것이 팬이기에 저는 주야장창 들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ufBX7zRJ64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난 너에게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금지곡이라는 소식을 신문을 통하여 들었습니다. 팝송을 표절했다는 지금은 사라진 공연윤리위원회(일명 공륜이라 불리는 것으로 영화나 음반의 가위질과 상영금지라는 악행을 행했던 검열기구였습니다)가 표절을 이유로 금지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무척이나 꽂혔던 노래였기에 아쉽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슬며시 난 너에게가 라디오에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공륜이 표절곡으로 못을 박았는데 무슨 재주로 다시 등장하나 아리송했습니다. 표절곡은 방송국에서도 틀어주지 않습니다. 가수가 원작곡가에게 곡을 사서, 즉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새로 사용권을 얻어야 음반을 내고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방송국에서도 틀어줍니다. 그래서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 정수라를 검색한 후에 다시 그가 부른 난 너에게를 검색했습니다( https://www.komca.or.kr/srch2/srch_01.jsp). 그랬더니 당초 정성조 씨가 작곡한 것으로 발표된 음반(1986, 외인구단 ost)에서 1995년에 작곡가 미상(UNKNOWN COMPOSER AUTHOR(Z9999900))으로 변경된 채로 등록된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이 설명의 의미는 원작곡가를 밝힐 수는 없지만, 원작곡가로부터 곡의 사용동의, 즉 사용료를 지불하고 이 노래를 사용한다는 말을 의미합니다. 그 사용합의가 명확하지 아니하지만. 1986년 당시에 녹음한 것이나 그 이후에 새로 녹음한 것도 포함하는 것이 아니었나 추측이 됩니다. 아무튼 원곡은 Paul Anka‘I Don't Like To Sleep Alone’이라는데, 두 곡을 들어보면 완전한 표절은 아니고 코드전개와 도입부분 등의 표절이라 봅니다. 그런데 제가 듣기에는 정수라 버전이 더 곡이 훌륭하고 노래도 잘 불렀다고 봅니다.

 

1990년대까지 한국에서는 외국의 노래를 무단으로 표절하는 악습이 있었습니다. 도덕불감증까지 언급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곡이 원곡보다 조잡하거나 질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상당수였습니다. 그나마 정수라의 난 너에게는 원곡보다 감성코드가 뛰어나고(물론 제 생각입니다) 노래도 잘 불렀다고 느껴지기에 나름 자부심이 생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otxViUvyw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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