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블로그(https://blog.naver.com/soonil39/120083208884)에는 홍순일 전 기자가 이용일 전 KBO 초대사무총장과 프로야구창단을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쌓은 일련의 사실을 구체적이고도 상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무수히 반복해서 봤지만, 볼 때마다 두 분의 눈물겨운 노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튼 홍순일 전 기자의 글을 종합하면, 1981. 8.에 프로야구출범을 기획하고 청와대와 교감을 얻으면서 각 대기업과 접촉하면서 일사천리로 진행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군사정부니까 그렇게 번갯불에 콩을 구워먹을 정도로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이지, 요즘같은 시대라면 여론취합이니, 예타, 인프라예산 등의 문제로 출범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5년 이상은 걸릴 것입니다. 홍순일 전 기자의 글을 보면 1981. 12. 11.까지 감독선임이 4개구단에 불과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프로야구 원년 시합이 1982. 3. 27. 삼성라이온즈 대 MBC청룡이었으니, 프로야구의 출범이 얼마나 빛의 속도로 이루어졌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81년 12월 11일 프로야구 창립 총회를 앞두고 MBC, 삼미를 제외한 4개 구단이 감독 인선을 끝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감독이 확정된 구단은 두산(김영덕 감독), 해태(김동엽 감독), 삼성(서영무 감독)뿐이었다. 롯데는 실업 팀 롯데 자이언츠의 박영길 감독이 지휘봉을 잡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소문에 불과했다. 그가 가장 유리한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우선 프로야구 롯데의 모태가 됐던 실업 팀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이었다. 77년 6월 감독에 취임한 그는 실업야구 최대 이벤트인 코리안 시리즈에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해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롯데그룹의 2인자로 구단주를 맡는 게 확실한 신준호 롯데건설 사장과 경남고 14회(60년도 졸업) 동기 동창이었다. [출처] <프로야구 탄생비화, 홍순일 전 기자의 네이버블로그> |
번갯불에 콩을 볶듯이 프로야구를 출범시켰으니, 당연히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지방야구장의 인프라입니다. 현 KBO총재 허구연이 유달리 인프라를 강조하는 것이 프로야구출범 당시의 열악한 인프라에 아마도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당시 지방야구장 중에서 배수시설과 조명시설, 선수락커, 관중좌석 등 제대로 구비한 야구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서울운동장(이후에 동대문운동장으로 불린 바로 그 운동장으로, 현재는 철거되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건립되었습니다)에서 지방구단을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조명시설이 미비한 지방구단은 다른 지방구단의 홈구장을 빌려서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중립구장’입니다.
프로축구만 100년 이상 시행한 영국은 물론 프로스포츠를 운영하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홈-어웨이 시스템은 공통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구장시설 때문에 홈도 아니고 어웨이도 아닌 구장에서 경기를 치러야 했으며, 포장을 그럴듯하게 꾸민 것이 ‘중립구장’입니다. 상식적으로 프로스포츠에서 중립구장에서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황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홍순일 전 기자의 블로그를 뒤져봐도 문제의 중립구장에 대한 것은 물론 유니폼에 대한 것을 찾기 어렵습니다. 사실 중립구장을 사용했다는 것 자체가 불명예인 동시에 본인 스스로 쪽이 팔리기에 쓰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중립구장의 존재와 직결되는 것이 당시 OBBears의 중립구장 유니폼과 삼성라이온즈의 중립구장 유니폼입니다. 이 두 팀만이 중립구장 유니폼을 착용했습니다. 다음 기사는 삼성라이온즈의 오대석이 홈구장인 대구가 아니라 부산구덕야구장에서 1982. 6. 12.에 대 삼미슈퍼스타즈와 펼친 경기에서 히트 포 더 싸이클(hits for the cycle)을 작성한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부산이란 롯데자이언츠의 홈구장이지만, 삼성라이온즈 및 삼미슈퍼스타즈를 기준으로는 중립구장입니다. 중립구장은 홈구장도, 그리고 어웨이구장 모두 성립할 수 있습니다. 중립구장에서 삼성라이온즈는 홈팀이 된 것입니다. 바로 이 중립구장에서 착용한 유니폼을 구비한 것이 원년의 삼성라이온즈와 OBBears입니다.
다음은 삼성라이온즈 유니폼 변천사를 소개하는 사진입니다. 무려 삼성라이온즈 홈페이지에서도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이 홈페이지를 만든 분은 원년 경기와 중립구장의 개념을 몰랐던 분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사실 자체를 오해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삼성라이온즈의 홈 유니폼은 파란색의 三星 글자가 새겨진 유니폼이었고, 원정 三星 유니폼(MBC청룡과 원년 첫 경기를 치를 바로 그 유니폼)이 보통의 원정 유니폼이었습니다. 그런데 중립구장에서는 ‘라이온즈’라고 새겨진 빨간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중립홈에서는 줄무늬 ‘라이온즈’ 유니폼이고, 중립원정에서는 빨간 ‘라이온즈’ 유니폼이었습니다. 슬프게도 이 사실을 쓰는 기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후기리그에서는 중립구장 개념 자체가 사라졌기에 유니폼은 2종으로, 정확히는 빨간 三星 글자(폰트)가 새겨진 홈 유니폼과 ‘DAEGU’ 글자가 새겨진 어웨이 유니폼으로 통일했습니다. 야구커뮤니티와 삼성라이온즈 홈페이지의 설명에서 빨간 三星 유니폼이 한국시리즈 유니폼이라 주장하는데, 그것은 틀린 주장입니다. 아무튼 빨간 三星 유니폼은 후기리그 도중에 ‘Lions’ 글자가 필기체로 쓰여진(당시 세이부 라이온즈 유니폼과 같으나 글자 색만 다름) 유니폼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비운의 투수 이선희가 만루홈런을 맞은 바로 그 유니폼이 이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중립구장의 유니폼을 고수한 것은 OBBears입니다. 특이하게 OBBears는 서울운동장을 당시 서울 연고인 MBC청룡에 대하여는 어웨이팀이지만, 다른 팀에게는 홈구장이었습니다. 그래서 MBC청룡과 서울운동장에서 경기를 할 때는 ‘OB’ 글자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었고, 대전에서는 흰색(정확히는 미색) ‘OB’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전자는 제2의 홈이었기에 그렇게 입었고, 후자는 진정한 홈이었기에 그렇게 입었습니다. 한편 OBBears는 MBC청룡이 아닌 다른 팀에게는 서울이 홈이었기에, OBBears 글자가 새겨진 전통적인 유니폼을 입었고, 중립구장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음 사진은 서울운동장에서 MBC청룡과 경기를 한 것이기에 네이비색 ‘OB’ 유니폼을 입은 것입니다.
원년프로야구는 졸속으로 출범시켰습니다. 그래서 중립구장이라는 희한한 개념의 구장이 존재했습니다. 물론 원년에만 존재했고 그 이후에는 영원히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원년부터 프로야구의 골수팬으로서 팩트를 전달합니다.
아무튼 홍순일 전 기자의 글을 종합하면, 1981. 8.에 프로야구출범을 기획하고 청와대와 교감을 얻으면서 각 대기업과 접촉하면서 일사천리로 진행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군사정부니까 그렇게 번갯불에 콩을 구워먹을 정도로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이지, 요즘같은 시대라면 여론취합이니, 예타, 인프라예산 등의 문제로 출범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5년 이상은 걸릴 것입니다. 홍순일 전 기자의 글을 보면 1981. 12. 11.까지 감독선임이 4개구단에 불과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프로야구 원년 시합이 1982. 3. 27. 삼성라이온즈 대 MBC청룡이었으니, 프로야구의 출범이 얼마나 빛의 속도로 이루어졌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81년 12월 11일 프로야구 창립 총회를 앞두고 MBC, 삼미를 제외한 4개 구단이 감독 인선을 끝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감독이 확정된 구단은 두산(김영덕 감독), 해태(김동엽 감독), 삼성(서영무 감독)뿐이었다. 롯데는 실업 팀 롯데 자이언츠의 박영길 감독이 지휘봉을 잡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소문에 불과했다. 그가 가장 유리한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우선 프로야구 롯데의 모태가 됐던 실업 팀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이었다. 77년 6월 감독에 취임한 그는 실업야구 최대 이벤트인 코리안 시리즈에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해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롯데그룹의 2인자로 구단주를 맡는 게 확실한 신준호 롯데건설 사장과 경남고 14회(60년도 졸업) 동기 동창이었다. [출처] <프로야구 탄생비화, 홍순일 전 기자의 네이버블로그> |
번갯불에 콩을 볶듯이 프로야구를 출범시켰으니, 당연히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지방야구장의 인프라입니다. 현 KBO총재 허구연이 유달리 인프라를 강조하는 것이 프로야구출범 당시의 열악한 인프라에 아마도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당시 지방야구장 중에서 배수시설과 조명시설, 선수락커, 관중좌석 등 제대로 구비한 야구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서울운동장(이후에 동대문운동장으로 불린 바로 그 운동장으로, 현재는 철거되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건립되었습니다)에서 지방구단을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조명시설이 미비한 지방구단은 다른 지방구단의 홈구장을 빌려서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중립구장’입니다.
프로축구만 100년 이상 시행한 영국은 물론 프로스포츠를 운영하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홈-어웨이 시스템은 공통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구장시설 때문에 홈도 아니고 어웨이도 아닌 구장에서 경기를 치러야 했으며, 포장을 그럴듯하게 꾸민 것이 ‘중립구장’입니다. 상식적으로 프로스포츠에서 중립구장에서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황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홍순일 전 기자의 블로그를 뒤져봐도 문제의 중립구장에 대한 것은 물론 유니폼에 대한 것을 찾기 어렵습니다. 사실 중립구장을 사용했다는 것 자체가 불명예인 동시에 본인 스스로 쪽이 팔리기에 쓰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중립구장의 존재와 직결되는 것이 당시 OBBears의 중립구장 유니폼과 삼성라이온즈의 중립구장 유니폼입니다. 이 두 팀만이 중립구장 유니폼을 착용했습니다. 다음 기사는 삼성라이온즈의 오대석이 홈구장인 대구가 아니라 부산구덕야구장에서 1982. 6. 12.에 대 삼미슈퍼스타즈와 펼친 경기에서 히트 포 더 싸이클(hits for the cycle)을 작성한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부산이란 롯데자이언츠의 홈구장이지만, 삼성라이온즈 및 삼미슈퍼스타즈를 기준으로는 중립구장입니다. 중립구장은 홈구장도, 그리고 어웨이구장 모두 성립할 수 있습니다. 중립구장에서 삼성라이온즈는 홈팀이 된 것입니다. 바로 이 중립구장에서 착용한 유니폼을 구비한 것이 원년의 삼성라이온즈와 OBBears입니다.
다음은 삼성라이온즈 유니폼 변천사를 소개하는 사진입니다. 무려 삼성라이온즈 홈페이지에서도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이 홈페이지를 만든 분은 원년 경기와 중립구장의 개념을 몰랐던 분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사실 자체를 오해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삼성라이온즈의 홈 유니폼은 파란색의 三星 글자가 새겨진 유니폼이었고, 원정 三星 유니폼(MBC청룡과 원년 첫 경기를 치를 바로 그 유니폼)이 보통의 원정 유니폼이었습니다. 그런데 중립구장에서는 ‘라이온즈’라고 새겨진 빨간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중립홈에서는 줄무늬 ‘라이온즈’ 유니폼이고, 중립원정에서는 빨간 ‘라이온즈’ 유니폼이었습니다. 슬프게도 이 사실을 쓰는 기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후기리그에서는 중립구장 개념 자체가 사라졌기에 유니폼은 2종으로, 정확히는 빨간 三星 글자(폰트)가 새겨진 홈 유니폼과 ‘DAEGU’ 글자가 새겨진 어웨이 유니폼으로 통일했습니다. 야구커뮤니티와 삼성라이온즈 홈페이지의 설명에서 빨간 三星 유니폼이 한국시리즈 유니폼이라 주장하는데, 그것은 틀린 주장입니다. 아무튼 빨간 三星 유니폼은 후기리그 도중에 ‘Lions’ 글자가 필기체로 쓰여진(당시 세이부 라이온즈 유니폼과 같으나 글자 색만 다름) 유니폼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비운의 투수 이선희가 만루홈런을 맞은 바로 그 유니폼이 이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중립구장의 유니폼을 고수한 것은 OBBears입니다. 특이하게 OBBears는 서울운동장을 당시 서울 연고인 MBC청룡에 대하여는 어웨이팀이지만, 다른 팀에게는 홈구장이었습니다. 그래서 MBC청룡과 서울운동장에서 경기를 할 때는 ‘OB’ 글자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었고, 대전에서는 흰색(정확히는 미색) ‘OB’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전자는 제2의 홈이었기에 그렇게 입었고, 후자는 진정한 홈이었기에 그렇게 입었습니다. 한편 OBBears는 MBC청룡이 아닌 다른 팀에게는 서울이 홈이었기에, OBBears 글자가 새겨진 전통적인 유니폼을 입었고, 중립구장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음 사진은 서울운동장에서 MBC청룡과 경기를 한 것이기에 네이비색 ‘OB’ 유니폼을 입은 것입니다.
원년프로야구는 졸속으로 출범시켰습니다. 그래서 중립구장이라는 희한한 개념의 구장이 존재했습니다. 물론 원년에만 존재했고 그 이후에는 영원히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원년부터 프로야구의 골수팬으로서 팩트를 전달합니다.
아무튼 홍순일 전 기자의 글을 종합하면, 1981. 8.에 프로야구출범을 기획하고 청와대와 교감을 얻으면서 각 대기업과 접촉하면서 일사천리로 진행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군사정부니까 그렇게 번갯불에 콩을 구워먹을 정도로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이지, 요즘같은 시대라면 여론취합이니, 예타, 인프라예산 등의 문제로 출범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5년 이상은 걸릴 것입니다. 홍순일 전 기자의 글을 보면 1981. 12. 11.까지 감독선임이 4개구단에 불과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프로야구 원년 시합이 1982. 3. 27. 삼성라이온즈 대 MBC청룡이었으니, 프로야구의 출범이 얼마나 빛의 속도로 이루어졌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81년 12월 11일 프로야구 창립 총회를 앞두고 MBC, 삼미를 제외한 4개 구단이 감독 인선을 끝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감독이 확정된 구단은 두산(김영덕 감독), 해태(김동엽 감독), 삼성(서영무 감독)뿐이었다. 롯데는 실업 팀 롯데 자이언츠의 박영길 감독이 지휘봉을 잡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소문에 불과했다. 그가 가장 유리한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우선 프로야구 롯데의 모태가 됐던 실업 팀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이었다. 77년 6월 감독에 취임한 그는 실업야구 최대 이벤트인 코리안 시리즈에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해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롯데그룹의 2인자로 구단주를 맡는 게 확실한 신준호 롯데건설 사장과 경남고 14회(60년도 졸업) 동기 동창이었다. [출처] <프로야구 탄생비화, 홍순일 전 기자의 네이버블로그> |
번갯불에 콩을 볶듯이 프로야구를 출범시켰으니, 당연히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지방야구장의 인프라입니다. 현 KBO총재 허구연이 유달리 인프라를 강조하는 것이 프로야구출범 당시의 열악한 인프라에 아마도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당시 지방야구장 중에서 배수시설과 조명시설, 선수락커, 관중좌석 등 제대로 구비한 야구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서울운동장(이후에 동대문운동장으로 불린 바로 그 운동장으로, 현재는 철거되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건립되었습니다)에서 지방구단을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조명시설이 미비한 지방구단은 다른 지방구단의 홈구장을 빌려서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중립구장’입니다.
프로축구만 100년 이상 시행한 영국은 물론 프로스포츠를 운영하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홈-어웨이 시스템은 공통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구장시설 때문에 홈도 아니고 어웨이도 아닌 구장에서 경기를 치러야 했으며, 포장을 그럴듯하게 꾸민 것이 ‘중립구장’입니다. 상식적으로 프로스포츠에서 중립구장에서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황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홍순일 전 기자의 블로그를 뒤져봐도 문제의 중립구장에 대한 것은 물론 유니폼에 대한 것을 찾기 어렵습니다. 사실 중립구장을 사용했다는 것 자체가 불명예인 동시에 본인 스스로 쪽이 팔리기에 쓰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중립구장의 존재와 직결되는 것이 당시 OBBears의 중립구장 유니폼과 삼성라이온즈의 중립구장 유니폼입니다. 이 두 팀만이 중립구장 유니폼을 착용했습니다. 다음 기사는 삼성라이온즈의 오대석이 홈구장인 대구가 아니라 부산구덕야구장에서 1982. 6. 12.에 대 삼미슈퍼스타즈와 펼친 경기에서 히트 포 더 싸이클(hits for the cycle)을 작성한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부산이란 롯데자이언츠의 홈구장이지만, 삼성라이온즈 및 삼미슈퍼스타즈를 기준으로는 중립구장입니다. 중립구장은 홈구장도, 그리고 어웨이구장 모두 성립할 수 있습니다. 중립구장에서 삼성라이온즈는 홈팀이 된 것입니다. 바로 이 중립구장에서 착용한 유니폼을 구비한 것이 원년의 삼성라이온즈와 OBBears입니다.
다음은 삼성라이온즈 유니폼 변천사를 소개하는 사진입니다. 무려 삼성라이온즈 홈페이지에서도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이 홈페이지를 만든 분은 원년 경기와 중립구장의 개념을 몰랐던 분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사실 자체를 오해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삼성라이온즈의 홈 유니폼은 파란색의 三星 글자가 새겨진 유니폼이었고, 원정 三星 유니폼(MBC청룡과 원년 첫 경기를 치를 바로 그 유니폼)이 보통의 원정 유니폼이었습니다. 그런데 중립구장에서는 ‘라이온즈’라고 새겨진 빨간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중립홈에서는 줄무늬 ‘라이온즈’ 유니폼이고, 중립원정에서는 빨간 ‘라이온즈’ 유니폼이었습니다. 슬프게도 이 사실을 쓰는 기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후기리그에서는 중립구장 개념 자체가 사라졌기에 유니폼은 2종으로, 정확히는 빨간 三星 글자(폰트)가 새겨진 홈 유니폼과 ‘DAEGU’ 글자가 새겨진 어웨이 유니폼으로 통일했습니다. 야구커뮤니티와 삼성라이온즈 홈페이지의 설명에서 빨간 三星 유니폼이 한국시리즈 유니폼이라 주장하는데, 그것은 틀린 주장입니다. 아무튼 빨간 三星 유니폼은 후기리그 도중에 ‘Lions’ 글자가 필기체로 쓰여진(당시 세이부 라이온즈 유니폼과 같으나 글자 색만 다름) 유니폼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비운의 투수 이선희가 만루홈런을 맞은 바로 그 유니폼이 이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중립구장의 유니폼을 고수한 것은 OBBears입니다. 특이하게 OBBears는 서울운동장을 당시 서울 연고인 MBC청룡에 대하여는 어웨이팀이지만, 다른 팀에게는 홈구장이었습니다. 그래서 MBC청룡과 서울운동장에서 경기를 할 때는 ‘OB’ 글자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었고, 대전에서는 흰색(정확히는 미색) ‘OB’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전자는 제2의 홈이었기에 그렇게 입었고, 후자는 진정한 홈이었기에 그렇게 입었습니다. 한편 OBBears는 MBC청룡이 아닌 다른 팀에게는 서울이 홈이었기에, OBBears 글자가 새겨진 전통적인 유니폼을 입었고, 중립구장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음 사진은 서울운동장에서 MBC청룡과 경기를 한 것이기에 네이비색 ‘OB’ 유니폼을 입은 것입니다.
원년프로야구는 졸속으로 출범시켰습니다. 그래서 중립구장이라는 희한한 개념의 구장이 존재했습니다. 물론 원년에만 존재했고 그 이후에는 영원히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원년부터 프로야구의 골수팬으로서 팩트를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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