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고인이 되신 장광근 전 의원과 작년 겨울에 술을 거하게 마신 적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주로 듣는 입장이었는데, 역시 정치인 출신이라 그런지 핵심적인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서 쉽게 풀어서 설명을 잘했습니다. 장 전 의원의 말 중에서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에게 조언한 부분입니다. 장 전 의원의 조언이란 바로 ‘법대로’라는 말을 가급적 쓰지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대선을 여러 차례 출마한 이 전 총재의 정치인생 중에서 대법관 시절부터 따라다니던 ‘법대로’라는 말을 거의 한 기억이 실제로도 없었습니다. 법이라는 것은 합법과 불법이라는 일도양단의 판단 때문에 승패가 갈리기 마련입니다. 법관은 법대로라는 판단으로 결론을 내리면 그만이지만, 당사자에게 기판력이니 일사부재리니 하는 말은 법률에서나 존재하는 것이고, 현실에서 소송의 패자는 죽을 때까지 그 패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며 때로는 절대로 승복하지 않습니다. 법관을 원망하고 상대를 원망하는 것이 송사의 숙명입니다. 송사를 겪고 패소의 아픔을 당한 사람은 ‘법대로’라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적대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인은 입법으로 정치활동을의 결실을 맺는 경우가 많습니다. 입법은 결국 ‘법대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익을 보는 자와 손해를 보는 자가 갈립니다. 이익을 보는 자는 쾌재를 부르지만, 손해를 보는 자는 극한투쟁을 벌이고 입법을 행한 정치인에게 증오라는 감정을 쌓기 마련입니다. 정치는 지지자를 보다 많이 확보하는 게임인데, 원수를 쌓는다면 원활한 정치가 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법률가 출신 정치인 중에서 ‘법대로’라는 말은 일종의 금기어입니다. 현직 국회의원 중에서 법률가 출신이 밤하늘의 별처럼 많아도 ‘법대로’를 내놓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그래서 입법활동의 표결에 대하여는 당론으로 정한 법안 아닌 이상 당·부당에 대하여도 말을 하지도 않습니다.
국회의원과 같은 대표적인 정치인은 이렇게 대세적인 여론을 파악하여 정책으로 이어지는 역할을 중시합니다. 가급적 정부입법에 수정을 하는 방법으로 자기의 활동을 한정합니다. 정치소신이 있더라도 손해를 보는 집단을 배려하는 정치적인 멘트를 앞세웁니다. 어찌보면 정치인은 이도저도 아닌 회색지대에 사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 활동도 광범위하기에 역설적으로 무엇을 하는지 오히려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지식인들, 특히 언론인들을 중심으로 정치인을 혐오하는 정서를 확대재생산했습니다.
다음 유튜브 쇼츠상의 고영수의 발언도 정치인에게 강한 불만과 비판을 담고 있는 것도 그런 시각의 연장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고영수가 비판한 문제의 정치인이 정치에 입문하기 전의 신분, 가령, 고등검사장이나 고등법원장이었다면 고영수가 그렇게 희화적인 멘트를 할 수 있는지 지극히 의문입니다. 서울대병원장이나 세브란스병원장이라면 고영수는 절대로 그런 식으로 발언을 못했을 것입니다. 고영수의 쇼츠속의 멘트는 정치인의 갑질을 비판하면서 정치인을 폄하하는 것이 그 의도였을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shorts/8hzE6mvwjMc
그러나 역설적으로 고영수의 말이야말로 정치인의 기능은 살아있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전직 고등법원장이나 고등검사장이 현실정치에 입문하였기에, 고영수와 같은 코미디언이나 평범하고 소박한 시민들도 험악한 발언이나 비판적인 발언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장에서 순대를 파는 상인은 죽을 때까지 고등법원장이나 장관과 악수할 일이 없습니다. 그 고등법원장이나 장관이 정치인으로 변신을 하면서 비로소 그와 악수를 하고, 고충을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거에서는 공약을 발표하고 민심을 탐방합니다. 여론조사에 따라 정책을 개발합니다. 소박한 서민들의 의사가 집약된 여론을 조사하고 분석합니다. 당선된 정치인은 서민이 만나기 어려운 고등법원장이나 고등검사장에게 호통을 치고 법무부 장관을 질책합니다.
정치인을 비난하는 것은 당장 통쾌한 맛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에서 가렵고 아픈 것을 긁거나 치유하는 것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정치인이라는 존재가 없다면 조선시대 노비나 상민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정치인에게 정확하게 민심을 알리고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 이전에 혐오나 모욕은 인생에서 큰 의미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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