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의 유연성(Flexibility of labor market)
○지금은 시들하지만, 1997년말 IMF 구제금융 당시에 저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말은 언론에서 무수히 반복되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미셸 깡드쉬라는 IMF총재가 한국에서 마치 점령군처럼 군림했습니다. 당시 대통령 선거 기간이었는데, 유력 후보자인 김대중, 이회창, 그리고 이인제 후보에게 구제금융 조건을 성실하게 이행하겠노라고 다짐하는 내용을 담은 각서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마치 만고불변의 진리인 양 반복되었습니다. 비정규직법도 국회를 통과하였습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그 자체는 족보가 불분명한 말은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학문적 성과의 일환으로, 그리고 노동시장에서도 사용되는 말입니다. 해고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의미의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미국유학파 경제학자에서도 유행가처럼 유행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강변하는 분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하면 무조건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것은 논리학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부당전제의 오류’입니다. 미국에서만 유효한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지구상의 인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는 점을 간과한 이론입니다.
○반미를 주창하는 중동의 거물들의 자식들도, 중국 지도층의 자식들도, 그리고 한국의 이공계열 박사들도 모두 미국으로 몰립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FIVE EYES’라 불리는 미국, 영국, 카나다,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의 앵글로 색슨 국가의 인재들은 미국에 ‘무혈입성’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국인이 미국땅을 밟으려면 온갖 수모를 감내하여야 하지만, 미국인은 프리패스 수준으로 한국으로의 입국이 가능합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미국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해도 찾아오는 인력이 넘칩니다. 지구상의 인재를 가려 뽑아도 오고 싶어하는 인재가 차고도 넘칩니다. 그래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조해도 별 지장이 없습니다. 미국은 일본보다 인구가 두 배이면서도 1인당 GDP도 두 배입니다. 거의 사기수준입니다. 그만큼 미국은 풍요의 나라입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지금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말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는 미국뿐이기에, 유연성을 강조할 수도 없습니다. 당연히 글로벌 스탠다드도 아닙니다. 그러나 IMF 구제금융 이후 IMF가 강제한 비정규직의 남발은 한국 사회에 커다란 변혁을 몰고 왔습니다. 대기업은 공채라는 채용시스템을 버렸고,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거의 필적할 만한 비율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문과 출신들은 취업 자체가 불확실한 고통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비정규직이 일상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다음과 같이 비정규직의 애환을 그린 ‘직장의 신’과 같은 드라마까지 제작이 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shorts/DTMtmBVwQj8
○1980년대에 정규직 샐러리맨의 애환을 그린 것이 ‘TV손자병법’이었다면, 이제는 비정규직의 애환을 담은 ‘미생’과 ‘직장의 신’이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담담히 그리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정규직의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노라고 기염을 토합니다. 그러나 양질의 일자리를 실제로 만드는 대기업은 이공계 위주로, 게다가 수시채용으로 인력충원을 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아웃소싱의 바람으로 특정 부분은 아예 외주를 주는 것이 기본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SKY’라 불리는 학력의 벽은 허물어진지 오랩니다. 이제는 지옥문이 제대로 열린 상황입니다. 대졸백수를 줄일 방법이 없다는 것이 더 뼈아픈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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