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보면 뭔가 ‘뻘짓’같은 일을 하는 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동기의 ‘논개’에는 ‘몸바쳐서’라는 후크가 정말 많이 등장합니다. 이동기의 ‘논개’를 알고 난 후에 과연 이동기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얼마나 많이 ‘몸바쳐서’라는 가사를 부르는가 궁금해서 그 숫자를 세곤 했는데,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시지프스가 제우스에게 받은 형벌처럼 무수히 반복을 해도 그 숫자가 얼마인지 끝내(실은 아직도!) 잘 몰랐기에 감회가 새로운 노래입니다.
이동기의 ‘논개’를 알게 된 것은 1983년경입니다. 무심코 대학야구를 보다가 당시 대학생들이 ‘몸바쳐서’를 떼창으로 부르면서 ‘응원가’로 바로 이 ‘논개’를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에 저는 도대체 저 노래는 뭐길래 마르고 닳도록 ‘몸바쳐서’를 반복하는가 의아했습니다. 그리고 생소한 저 노래, 그리고 부른 가수가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당시 일간지에서 ‘논개’라는 노래의 소개와 가수에 대한 인터뷰를 보고 ‘이거다!’싶어서 탐독을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spa2ZY5DjI
어려서 코미디언 이기동을 무척이나 좋아했기에, ‘이동기’라는 이름이 입에 착 감겼습니다. 권투선수 출신으로 가수에 데뷔를 했다는 부분이 무척이나 인상이 깊었습니다. 청주출신으로 ‘논개’가 망하면 아예 가수를 포기하겠다는 각오로 취입을 했는데, 반응이 좋지 않아 청주로 낙향을 했다가 자신이 작곡한 노래가 ‘응원가’로 애용이 된다는 사실, 그리고 요즘은 거의 사어가 된 ‘리어카 테이프’에서 뜨거운 인기를 실감하고 가수의 길을 다시금 가게 됐다는 뭔가 드라마틱한 내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분은 ‘아 맞다!’를 연발할 것입니다. 당시에 ‘논개’는 변영로 시인의 시에도 등장하고 원로 소설가 월탄 박종화의 소설에도 등장했으며, 무려 위인전에도 등장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논개’를 설명하려면 당연히 ‘충절’, ‘의녀’, ‘왜장과 함께 한 장렬한 최후’ 등의 말이 자동적으로 등장하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고고리듬으로 경쾌한 박자의 ‘논개’를 만든 것은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입니다. 가령, 이순신 장군이나 윤봉길 등 위인전에 등장하는 인물로 고고리듬의 유행가를 만든다면 그 얼마나 기발한 일인가 신기할 따름입니다.
1983년은 건전가요로 출발하여 유행가로서도 대박이 난 ‘아! 대한민국’이 가수들의 테이프에 ‘건전가요’로 삽입되던 시절인데, 그 시절에 위인전에 등장하는 ‘논개’를 주제로 유행가를 부른다는 것은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튼 이동기는 이 노래가 대박이 나서 각종 가요제에 단골손님처럼 등장을 했습니다. 물론 대학야구를 넘어 각종 스포츠에 응원가로도 맹위를 떨쳤습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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