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풍이 있으면 역풍이 있습니다. 밀물이 오고나면 썰물이 옵니다. 인생살이도 자연의 이치와 일치합니다. 서양의 유명 철학자 헤겔은 이것을 정반합의 원리가 구현되는 변증법적 역사라고 불렀습니다. 어려운 철학은 그만두고 인생사가 다이나믹하게 변하는 것은 경험적으로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가요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십 년간 트로트곡은 ‘전국노래자랑’ 아니면 ‘가요무대’에서나 들을 수 있었는데, 이제 트로트가 대세가 되었습니다.
역사가 돌고 도는 것은 아니지만 유행은 돌고 돕니다. 트로트가 대세가 되기 전인 1980년대 후반까지는 트로트가 역시 대세였습니다. 아이돌은 1990년대 후반부터 맹위를 떨쳤지만, 그 이전에는 서태지 등의 랩과 변진섭, 신승훈 등의 발라드가 대세였습니다. 1980년대 중후반까지는 트로트가 대세였기에, 나름 발라드곡인 김범룡의 데뷔곡이자 대표곡인 ‘바람 바람 바람’은 연주와 노래 모두 트로트풍이 물씬 베었습니다. 박남정은 ‘아 바람이여’라는 트로트댄스곡으로 로봇춤을 추는 블랙코미디를 연출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유행이 아무리 돌고 돌아도 변하지 않는 것이 유행가의 가사입니다. 대중가수의 원조격인 남인수의 ‘해조곡’부터 지금까지 사랑은 유행가의 노스탤지어이자 영원한 테마입니다. 한국의 가요사에서 사랑을 빼면 기둥이 폭삭 무너질 수준입니다. 그런데 1970년대까지의 한국 가요사 중에서 주목할 점이 있으니, 그것은 유행가 중에서 한국의 자연과 지명을 소재로 삼은 것이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이러한 자연과 지명의 활용은 약간의 국뽕이 가미된 것으로서 대중에게 뜨거운 인기를 얻었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물론 아이돌이 대세가 되고 기획사가 공장에서 히트곡을 뽑는 현 상황에서는 절대로 이러한 소재의 가요가 등장할 일이 없습니다.
송창식의 ‘토함산’, ‘선운사’, 양희은의 ‘한계령’, 문성재의 ‘부산갈매기,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이 그 대표곡입니다. 물론 아재를 넘어 할재 시절의 ‘비 내리는 고모령’이나 ‘비 내리를 호남선’, ‘대전부르스’, ‘목포는 항구다’ 등을 빼고도 1970년대 당시까지는 자연과 지명이 대중가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여 지역민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습니다. 나훈아의 유명한 ‘고향시리즈’도 이러한 소시민들의 정서를 당연히 반영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송창식은 자연에 몰입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곡으로 담아서 아름다운 노래로 승화시켰습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구축하여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송창식의 ‘토함산’은 지금 들어도 명곡입니다. 송창식은 자연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일상소재를 곡으로 완성한 대단한 인물입니다. ‘고래사냥’도 그의 대표곡인데, 우울한 시대상을 극복하려는 심정을 고래사냥이라는 메타포어로 완성한 역작입니다. 그런가 하면 서정주의 ‘푸르른 날’을 명곡으로 완성한 이 시대의 재주꾼이기도 합니다. 송창식의 ‘토함산’은 그 완성도에 비하여 대중적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많이 들어도 그리 질리지 않는 명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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