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쉽게 배우는 방법 중의 하나가 해당 외국어로 된 노래를 부르거나 드라마 또는 영화를 보는 것입니다. 예전에 일본어를 배운다고 어려서 보던 마징가제트 등 만화영화의 주제가 등을 배워서 반복하여 부르다가 나중에는 엔카(えんか, 演歌)를 배워서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가끔 부릅니다. 그런데 엔카를 아는 분들은 숨도 안 쉬고 동의를 하겠지만, 정말이지 엔카의 가사들은 천편일률입니다. 사랑, 이별, 눈물, 후회 등 이러한 내용 외에 다른 정서는 도무지 찾기 어렵습니다. 글자 그대로 엔카, 즉 연가라는 특성을 반영한 것이라지만 사랑도 천태만상인데, 이건 심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엔카의 천편일률은 일본 문화의 구조적 특징이기도 합니다. 일본은 혼네(ほんね, 本音)와 다테마에(たてまえ, 建(て)前)를 구분하여 본심인 혼네를 감추고 의례적인 말, 즉 다테마에만 하는 확고한 문화가 있습니다. 다테마에만으로 표현을 하기에 외부에 표출되는 말은 대동소이한 의례적인 말로 일관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일본식 메이와쿠 문화, 즉 ‘他人に迷惑を掛けるな(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마라).’라는 것은 예의를 중시한다기 보다 실은 진심을 감추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그런 문화가 엔카의 천편일률적인 가사와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도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튀는 사람에게 유·무형의 불이익을 주는 문화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주자의 주장 이외의 주장을 하거나 성리학 이외의 학문에 탐닉하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 목숨까지 잃을 수 있던 시절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개성을 주장하면서 튀는 행동을 하면 눈총을 받는 문화는 있습니다. 노스페이스 패딩이나 이스트팩 가방 등으로 우르르 유행이 번지는 것도 이러한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한국의 체면중시 문화란 실은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가는 문화입니다. 체면이란 남들의 눈총을 받는 것을 기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엔카에 강한 영향을 받은 한국의 대중가요는 한국식의 따라하기 문화가 촉매작용을 하여 대중가요의 가사도 엔카식으로 사랑, 이별, 눈물, 아픔 등의 가사로 점철되었습니다. 현대적 대중가수의 원조인 남인수의 ‘해조곡’의 가사를 음미해 보면 저절로 이해가 됩니다. 한국 대중가요는 사랑이 없으면 무너질 정도입니다. 혹자는 ‘사랑공해’라고까지 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사랑만이 전부가 아님에도 대중가요에 확실히 과잉대표된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외의 감정이 등장하면 이채롭다는 감정이 저절로 생깁니다.
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는 가사 하나만 보면 개성의 끝판왕입니다. 한국 대중가요 역사상 연극이 제재가 된 경우가 거의 없는 것에 더하여 연극이 끝난 상황을 포착하여 노래의 테마로 정했다는 것은 진귀한 일입니다. 연극이 끝난 후의 상황이란 격정의 감정을 쏟아 낸 후 깊은 침잠의 세계로 빠지는 대단히 이례적인 감정의 순간입니다.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하고 난 후에 경기가 끝난 후에 느끼는 깊은 침잠의 시간, 예선부터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부었다가 시합이 종료된 후에 느끼는 깊은 침잠, 몇날 몇일을 시험에 매진하다가 시험이 끝나면서 느끼는 깊은 침잠 등 우리가 살면서 아드레날린을 쏟아 붓다가 그 시간이 끝나는 상황은 무척이나 많습니다.
‘연극이 끝난 후’는 특이하게 이런 순간을 노래로 승화한 작품입니다. 연극이 끝난 후의 상황은 홀가분하기도 하지만 후회의 감정이 밀려오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육신의 힘은 고갈이 되지만, 환희를 누리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연극이 끝난 후의 시간은 영혼이 사라지는 허탈감의 극치인 순간이기도 합니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고 무수한 감정이 넘나드는 순간입니다. 무대공연이 끝난 후의 공허감 때문에, 일부 가수들이 마약이나 술에 빠지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감정 때문이라고 합니다. 고 함중아는 밤무대공연이 끝난 후에 공허감을 언제나 술로 달래다가 고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고 함중아 외에도 공연 후의 상실감, 허탈함, 희열 등의 복합감정을 못 이겨서 술에 찌든 가수가 꽤나 많습니다.
1980년 대학가요제에서 발표된 ‘연극이 끝난 후’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어떻게 이런 개성충만한 작품이 발표되었나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21세기 현대 가요도 예전처럼 사랑이 주된 테마입니다. 그러나 사랑에 목을 매는 사랑지상주의는 아닙니다. 그런데 그 옛날에 이렇게 사랑이 아닌 이색적인 제재로 노래를 만들었나하는 신기하다는 감정이 저절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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