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무어의 ‘007 옥토퍼시’는 인도를 배경으로 촬영하여 유명해진 영화입니다. 그리고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와 마찬가지로 써커스단이 배경이 된 영화로도 유명한 영화입니다. 이렇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써커스는 서양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TV에서도 명절 특집으로 방영이 되기도 했습니다. 소파 방정환이 쓴 어린이소설 중에 ‘77단의 비밀’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도 곡마단(왜 그런지 한국에서는 ‘곡마단’이라는 말이 더 많이 쓰였습니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항일운동이 소재입니다. 이렇게 곡마단이나 써커스는 우리생활의 일부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곡마단은 서양보다 먼저 쇠퇴했습니다. ‘유랑극단’으로도 불린 곡마단은 1980년대까지 지방의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수준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라져가는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니지만, 익숙한 것이 사라지는 것들이 늘어간다는 사실이 뭔가 허전하기만 합니다. 박경애가 부른 ‘곡예사의 첫사랑’은 곡마단을 배경으로 곡예공연을 펼치는 곡예사의 사랑을 그린 특이한 곡입니다.
1978년에 ‘곡예사의 첫사랑’이 발표되었는데, 당시 기준으로도 이미 곡마단은 거의 쇠퇴기에 이르렀습니다. 서울의 장충체육관이나 세종문화회관 등 유명장소에서 국내 유명 곡마단이 공연을 했다는 소식도 당시에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박경애가 이 노래를 부를 시점에서도 ‘곡예사’는 그 이전 세대에서 활약한 곡예사의 사랑을 그리는 것입니다. 참으로 얄궂은 사랑이야기인 셈입니다.
그러나 박경애의 ‘곡예사의 첫사랑’은 당시 라디오에서 엄청나게 많이 들렸던 노래입니다. 대중가요는 기승전결의 구조 속에서 클라이막스가 존재하기 마련인데, 특히 이 ‘곡예사의 첫사랑’은 감정의 폭발이 두드러진 곡이라 무척이나 인상이 깊은 노래입니다. 지금 들어도 박경애가 곡에 실린 곡예사의 사랑의 감정을 잘 실어서 멋지게 불렀습니다. 같은 노래라도 가수의 역량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박경애가 불러서 ‘곡예사의 첫사랑’의 맛이 더욱 강렬합니다. 그래서인지 히트곡은 동료 가수가 리메이크를 하기 마련인데, 유독 ‘곡예사의 첫사랑’은 리메이크가 없는 곡입니다. 한마디로 오로지 박경애만의 노래인 셈입니다.
인생사는 장점이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박경애는 ‘곡예사의 첫사랑’을 완벽하게 불렀으나, 후속곡은 그 이상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실은 ‘곡예사의 첫사랑’을 능가하는 ‘박경애 맞춤형 곡’을 취입하기란 무척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완성도에 있어서 ‘곡예사의 첫사랑’이 최대치이기에 그 이상의 완성도가 높은 곡을 취입하기가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그 이후 박경애는 TV에서 사라졌습니다. 대부분의 여성 연예인이 결혼과 동시에 퇴장을 하던 것이 당시의 관행이었는데, 박경애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박경애는 홀연히 부음란에 등장하여 불귀의 객이 되었습니다. ‘가요무대’라도 가끔 출연을 해서 올드팬들에게 예전처럼 ‘곡예사의 첫사랑’을 애절하게 불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아직도 진하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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