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초등학교에서는 볼펜을 못 쓰게 했습니다. 아마도 글씨를 다듬는데 연필이 낫기에 그랬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정확히는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초등학교시절에는(정확히는 ‘국민’학교시절!) 볼펜을 쓰지 못헸기에 더욱 인생선배들이 볼펜을 쓰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막상 해보면 아무 것도 아님에도 어린 마음에 사소한 것도 부러웠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중학교에 진학을 해서 처음으로 볼펜을 샀습니다. 같이 입학했던 친구들은 대부분 ‘모나미153’ 볼펜을 장만했습니다. 반골기질이 발휘됐는지 아니면 괜히 튀고 싶어서 그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저는 당시 라이벌격인 문화 campus 볼펜을 두 자루 샀습니다. 검정색과 파랑색 볼펜을 샀습니다. 처음으로 교복(요즘 교복이 아니라!)을 입어보면서 교복 안주머니에 볼펜을 간직했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처음에는 볼펜으로 공책에 글씨를 쓰면서 연필이나 샤프와는 다른 새로운 감촉에 신기하다는 생각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차츰 그러한 느낌도 사그라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잉크로 글씨를 쓰는 친구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들이 하니까 신기해 보여서 문구점에 가서 잉크와 펜을 샀습니다. 그러나 아뿔싸! 잉크로 글씨를 쓰는 것은 글씨를 쓰는 능력 외에 잉크를 간수하는 것이 엄청나게 어렵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교복바지와 공책, 그리고 교과서에 큼지막한 잉크얼룩을 간직해야 했습니다. 그 이후 제 인생에서 잉크와 펜을 쓴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금속 재질의 파커볼펜과 만년필에 눈길이 갔습니다. 파커볼펜이 뭔가 뽀다구가 있고 쓰면서 살살 미끄러지는 감촉이 좋았지만 무겁고 뭉툭한 것이 뭔가 부담이 갔습니다. 무엇보다도 가격의 압박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저 비싼 것을 쓰다가 분실이나 도난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맴돌았고, 공부에 집중이 어려웠습니다. 그냥 막 쓰는 볼펜이 최고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만년필도 쓰다가 닙이 닳아있는 모습ㄴ을 보면서 본전생각이 쎄게 들었습니다.
결국은 돌고 돌아서 모나미153볼펜으로 안착을 했습니다. 가볍고 잊어버려도 부담이 없고, 가격대비 볼의 감촉도 좋아서 수십 년간 제 손을 떠나지 않은 것이 모나미153볼펜입니다. 그 후에 넓은 세상에 나와 보니 동사무소, 군부대, 경찰, 검찰 등 각종 관공서에는 ‘당연히’ 모나미153볼펜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모나미153볼펜 뿐만이 아니라 다른 필기구에 비하면 가성비가 훌륭한 제품입니다. 다른 공산품의 가격이 수백 배에서 수천 배가 인상된 것을 고려하면 오히려 상대가격은 인하된 가격입니다.
그 이유는 다른 대체 필기구가 많다는 이유가 있기도 하지만, 이제 필기를 할 일이 현격하게 줄었다는 이유에 기인합니다. 중국산 저가 필기구의 범람은 치명적인 상황까지는 아닙니다. 과거 타자기 시절, 즉 볼펜으로 자를 대고 양식을 그려서 타자기로 타자를 치던 시절에도 볼펜의 역할은 긴요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글을 쓰고 프린터로 인쇄를 하는 시대에 볼펜의 필요성 자체가 현격히 줄었습니다. 막상 저를 보더라도 매일 글을 쓰는 것이 제 직업이지만, 정작 글씨는 잘 쓰지 않습니다.
제 책상의 볼펜통에는 선물로 받은 고가의 볼펜을 비롯한 필기구가 잔뜩 꽂혀있습니다. 그러나 글씨를 쓸 일이 있으면 언제나 모나미153볼펜으로 손이 갑니다. 모나미153볼펜을 쓰지 않고 다른 볼펜을 쓰면 죄를 짓는 것인 양 미안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무튼 제 인생에서 모나미153볼펜은 영원한 동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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