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과 가동연한>
○1970년대만 하더라도 회갑잔치는 흔했습니다. 회갑잔치에 방문한 손님에게 증정할 수건이나 치약, 비누 등의 선물도 흔했습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그야말로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지만, 그 시절은 평균수명이 60대니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2025년 현재 회갑잔치를 하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습니다. 그냥 중년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며, 생업에 종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회갑잔치를 하지 않는 이유는 예전에는 회갑을 생업전선에서 은퇴를 하고 여생을 즐긴다는 개념이었지만, 지금은 왕성한 경제활동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회갑이란 60세입니다. 그리고 고령자고용법상 정년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근로자로서는 정년이지만, 정년 이후의 생업전선의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촉탁직으로 정년 이후에도 근로자로 근무할 수도 있고, 자영업자로 새출발을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자영업자의 삶이 두려워서 그냥 백수로 지낼 수도 있습니다. 교통사고나 자연재해 등 인간에게 미치는 불행은 직업의 유무와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이러한 불행은 손해배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인신사고로 인한 손해의 산정에서 1). 적극 손해, 2). 소극 손해, 그리고 3). 위자료로 구분합니다(손해 3분설). 소극손해를 일실손해 또는 일실소득이라고도 합니다. 향후 벌어들일 소득을 인신사고로 잃어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일실손해는 글자 그대로 재직 중에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을 잃어버리는 것이기에, 종사한 직업을 기준으로 합니다. 그런데 정년 이후에 생업에 종사하는 경우는 그대로 적용하면 족하지만 백수인 경우에는 문제입니다. 대법원(대법원 1991. 8. 13. 선고 91다8890 판결)은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자의 일실수입을 산정함에 있어 그 피해자가 사고 당시 도시지역에 거주하는 무직자, 취업 전의 미성년자나 학생, 가정주부 등이어서 일정한 수입을 얻고 있지 아니한 경우에는, 적어도 사람이면 누구나 그 성별과 가동연령에 따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최소한의 소득인 보통인부의 일용노동자로서의 수입을 기준으로 하여 이를 산정할 수 있고, 이러한 경우 그 노임의 단가는 반드시 정부노임단가에 의존할 필요는 없고, 객관성과 보편성을 지닌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다른 자료에 의하여서도 일용노동의 임금액을 산정할 수 있다.’라고 판시하여 도시일용근로자를 기준으로 일실소득을 산정합니다.
○사람은 평등하다고 헌법은 규정하지만, 이것은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하라는 의미이지 사람의 능력 자체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법원의 결론은 비현실적인 면이 있습니다. 가령, 같은 61세의 갑과 을이 있는데, 박사학위 소지자의 갑과 만년백수 을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부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개개인의 차이를 반영하여 획일적인 손해의 산정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무엇보다도 판사에게 지나치게 가혹합니다. 그래서 대법원은 도시일용근로자로 판단합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도시일용근로자로 판단할 것인가, 즉 가동연한의 문제가 등장합니다. 맨 처음에 제기한 문제로 귀결됩니다. 과거에는 60세 회갑잔치를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여 55세를 가동연한으로 봤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회갑잔치를 생략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립되었고, 이를 받아 대법원(대법원 1989. 12. 26. 88다카16867 선고 전원합의체 판결)도 만 60세로 가동연한을 연장했습니다. 그러나 최화정이나 최수종처럼 만 60세가 넘어도 40대로 보이는 사람이 흔합니다. 또한 왕성하게 생업전선에서 활약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대법원(대법원 2019. 2. 21. 선고 2018다248909 전원합의체 판결)은 다시 견해를 변경하여 만 65세를 원칙적인 가동연한으로 봤습니다.
○가동연한이 늘었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함의합니다. 직접적으로는 평균수명이 연장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수가 인간의 본능이기에 노인이 행복한 순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보험재정적자가 가속화되고, 국민연금재정의 고갈시점이 앞당겨진다는 비극을 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빈곤노인이 필연적이라는 비극이 가장 큽니다. 고령자에게 생업전선은 불리하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장수는 인간의 본능이지만, 경제적으로는 리스크라는 모순이 본격적으로 작동하는 순간입니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19조(정년) ①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여야 한다. ② 사업주가 제1항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미만으로 정한 경우에는 정년을 60세로 정한 것으로 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1] [다수의견] 대법원은 1989. 12. 26. 선고한 88다카16867 전원합의체 판결(이하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이라 한다)에서 일반육체노동을 하는 사람 또는 육체노동을 주로 생계활동으로 하는 사람(이하 ‘육체노동’이라 한다)의 가동연한을 경험칙상 만 55세라고 본 기존 견해를 폐기하였다. 그 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육체노동의 가동연한을 경험칙상 만 60세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를 유지하여 왔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사회적·경제적 구조와 생활여건이 급속하게 향상·발전하고 법제도가 정비·개선됨에 따라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 당시 위 경험칙의 기초가 되었던 제반 사정들이 현저히 변하였기 때문에 위와 같은 견해는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만 60세를 넘어 만 65세까지도 가동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합당하다. [대법관 조희대, 대법관 이동원의 별개의견] 60~64세의 경제활동참가율이 약 60% 정도이고, 그 연령대 이후 사망확률이 급격히 증가하는 점, 특히 피해자가 어릴수록 위 연령대에 이르지 못하고 사망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점, 일반적인 법정 정년 및 연금 수급개시연령이 2018년 현재 63세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고 가까운 미래에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면, 통상의 경우 만 63세까지 경제활동을 한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고, 결국 평균여명, 경제활동참가율, 사회보장제도와의 연관성 등을 적절히 반영한 만 63세를 육체노동의 적정 가동연한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법관 김재형의 별개의견] 대법원은 경험칙상 가동연한에 관하여 포괄적인 법리를 제시하는 데에 그쳐야 하고 특정 연령으로 단정하여 선언해서는 안 된다. 현재 경험칙상 가동연한을 만 65세 또는 만 63세로 단정하여 선언할 수 있을 만큼 경험적 사실에 관해 확실한 변화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피해자의 건강상태 등 개인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가동연한을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이 경험칙이라고 할 수도 없다. 뿐만 아니라, 경험칙상 가동연한을 달리 인정해야 할 경험적 사실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대법원이 경험적 사실을 조사하여 전원합의체 판결로 경험칙상 가동연한을 특정하여 선언하는 것이 적정한지도 의문이다. 하급심 판결들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에, 대법원이 통일적 기준을 제시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대법원이 통일적 기준을 제시하는 방법은 다수의견과 같이 일률적으로 가동연한을 만 65세라고 단정하여 선언하는 방식이 아니라, ‘육체노동의 일반적인 가동연한을 만 60세 이상이라고만 제시하고 만 65세로 인정한 별개의 사건에서 사실심 판결이 옳다고 판단하는 방법’으로 충분하다. [2] 사실심 법원이 일실수입 산정의 기초가 되는 가동연한을 인정할 때에는, 국민의 평균여명, 경제수준, 고용조건 등의 사회적·경제적 여건 외에 연령별 근로자 인구수, 취업률 또는 근로참가율 및 직종별 근로조건과 정년 제한 등 제반 사정을 조사하여 이로부터 경험칙상 추정되는 가동연한을 도출하거나 피해자의 연령, 직업, 경력, 건강상태 등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하여, 가동연한을 인정할 수 있다. (대법원 2019. 2. 21. 선고 2018다248909 전원합의체 판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