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반칙왕’, 그리고 사직의 의사표시>
○이런저런 문제로 말이 많은 송강호이지만, 연기력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배우가 송강호입니다. 송강호와 마찬가지로 불미스러운 논쟁의 중심에 있는 정웅인이지만, 역시 연기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둘의 연기력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 ‘반칙왕’입니다. ‘반칙왕’은 은행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안정적이라는 직업이 실은 끊임없는 실적에 압박을 받는 불안정한 직업이라는 역설적인 상황을 그렸습니다. 극중 주인공 송강호는 지점장으로부터 질책을 받고 짝사랑에도 실패하는 꿀꿀한 상황을 극복하려고 가면을 쓴 레슬러로 변신합니다. 그러나 상사와의 갈등을 못 이긴 정웅인은 전화기 등 집기를 때려부수며 사표를 던집니다. 비록 조연이지만, 정웅인의 연기가 빛나는 명장면입니다.
○관객들은 이 둘을 자신의 처지와 동치시킵니다. 실은 관객은 영화에 몰입하면서 두 배우가 자신의 초라한 모습임을 발견합니다. 나는 왜 정웅인처럼 과감하게 전화를 때려부수고 사표를 던지지 못했을까? 송강호가 지점장에게 꾸중을 듣는 모습은 실제로는 나의 모습이 아닌가?, 라고 생각은 이어집니다. 영화 ‘반칙왕’은 주인공이 신데렐라 스토리의 ‘실장님’이 아닌 월급쟁이 소시민이기에 더욱 관객이 공감합니다. ‘반칙왕’이 묘사하는 송강호와 정웅인은 실적에 압박을 받고 상사의 질책에 좌절하는 월급쟁이 근로자 전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두 배우가 공통적으로 갈등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사표를 내는 장면입니다. 정웅인은 화끈하게 사표를 던지지만, 송강호는 미래가 두려워서 사표를 던지지 못합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냉정한 현실 때문입니다.
○대다수 근로자들은 송강호와 같은 선택을 합니다. 나아가 사표를 던지더라도 실은 수리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대다수입니다. 미래에 대한 설계도 없이 무작정 사표를 던지면 본인은 물론 부양가족의 생계가 미궁으로 빠집니다. 그래서 순간 감정적으로 사표를 냈다고 하더라도 금새 후회를 하고 상사에게 자존심을 던지고 사표를 철회합니다. 다음 <기사>는 바로 이러한 현실을 법원이 정확히 파악한 판결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홧김에’ 사표를 쓰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법원이 파악한 것입니다. 판사는 천상계에서 고고하게 살고 있는 신선이 아닙니다. 그냥 흔히 보는 이웃이고, 판사도 주위에서 이런 광경을 보고 살아가는 시민입니다. 당연히 사표가 진의가 아닐 수 있다는 판단하에 민법 제107조 소정의 ‘비진의 의사표시’라고 보아 사직의 의사가 진의가 아니고 그 철회를 인정한 것입니다.
○전국에는 무수히 많은 ‘반칙왕’ 속의 송강호가 있습니다. 홧김에, 그리고 상사의 질책이 짜증나서, 실적의 압박에 순간적인 감정으로 사표를 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용자는 그 사직서를 진정한 것으로 받아들여 사직처리를 하는 경우가 많기에, 꾹꾹 참고 송강호가 되어야 합니다. 사직은 자유지만, 돌이키는 것은 무수히 많은 고초를 감내해야 합니다.
<기사> 재판부는 그 증거로 "갈등을 빚던 실장이 시말서를 요구하자 그 과정에서 '그만두겠다'고 발언한 것"이라며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우발적으로 나온 발언으로 이해하는게 자연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어 "2년 반이 넘게 근무했고 사직할 동기도 없는데 '그만두겠다'는 발언을 확정적으로 보기 어렵다"며 "고용노동청에 A가 낸 진정 사유도 괴롭힘이지 부당해고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A가 저녁에 보낸 문자메시지로 사직 의사도 철회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B원장 측은 "이미 확정적으로 사직 표시를 했고 원장이 '그러자'고 승낙하면서 사직이 성립돼 철회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일축했다. 재판부는 "B가 '그러라'고 한 대답도 확정적인 의사의 합치보다는 순간적 대화 중에 이뤄진 우발적인 발언"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근거로 사직 의사가 합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A의 문자로 사직이 철회됐는데, 병원이 A를 일방적으로 해고한 것이라며 A의 손을 들어줬다. B원장은 법원 판단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직장에서 사업주에게 행한 의사 표시고 이를 사업주가 승낙했음에도 정황증거를 근거로 '우발적'이었다고 보고 사직이 성립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라며 "구두로 행한 사직 의사 표시를 매우 엄격하게 판단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03155955i <대법원 판례> 근로자가 회사의 경영방침에 따라 사직원을 제출하고 회사가 이를 받아들여 퇴직처리를 하였다가 즉시 재입사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근로자가 그 퇴직 전후에 걸쳐 실질적인 근로관계의 단절이 없이 계속 근무하였다면 그 사직원제출은 근로자가 퇴직을 할 의사 없이 퇴직의사를 표시한 것으로서 비진의의사표시에 해당하고 재입사를 전제로 사직원을 제출케 한 회사 또한 그와 같은 진의 아님을 알고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할 것이므로 위 사직원제출과 퇴직처리에 따른 퇴직의 효과는 생기지 아니한다. (대법원 2005. 4. 29.선고 2004두14090 판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