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와 산업안전/산업재해보상

<대한항공 조종사들의 주먹다짐과 산업재해>

방랑시인 2025. 4. 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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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책이 잘 팔리지 않는 이문열입니다만, 1990년대까지 이문열의 괴력은 놀랍기만 했습니다. 열정적으로 다작을 집필했고, 그 많은 독자들이 이문열의 작품에 매진을 했습니다. 하루키의 괴력을 능가하면 능가했지 절대로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아무튼 이문열의 일련의 작품에서는 정치인은 저질이라는 대사가 등장인물로부터 꼭 등장하곤 했습니다. 실은 그 시절에 언론도 정치인의 자질 비하는 마치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했습니다. 택시를 타도 택시기사는 정치인에 대한 훈계가 일상이었습니다.

 

혹자는 이런 현상을 두고 한국인의 종교는 정치라는 쓴소리를 하곤 했습니다. 정치과잉이라는 의미입니다. 지금도 전국의 술집에서는, 예전만 못하지만, 정치가 술안주인 시대입니다. 동창모임 등 각종 모임에서 정치와 종교를 금기시하는 풍조는 실은 한국인의 DNA에서 정치가 과몰입되었다는 방증입니다. 각종 모임에서 정치발언이 금기시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견해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굴이 다르듯이 정치적 견해도 당연히 다를 수 있지만, 내 주장이 상대로부터 논박을 당하면 나에 대한 정체성이 부정되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받게 됩니다. 감정적인 한국인으로서는 당연히 언성이 높아지고 주먹다짐까지 행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각종 모임에서는 종교와 더불어 정치발언은 금기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자식, 돈 등의 화제가 나오면 분위기가 썰렁해지곤 합니다.

 

다음 <기사>는 대한항공의 조종사들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찬반을 두고 주먹다짐을 벌인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조종사들이나 되는 분들이 체면을 잊고 주먹다짐을 벌이는 장면이 무척이나 사납습니다만, 전술한 대로 정치적 종교인 유교사상이 강력하게 DNA로 승화한 한국인의 처지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기업 내부의 질서를 훼손하는 경우이므로, 해당 조종사들에 대한 징계는 충분히 인정됩니다. 그런데 만약에 조종사들 중의 하나가 크게 다치거나 상해를 입으면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발생합니다.

 

기본적으로 주먹다짐은 사적인 영역에서 행해진 일입니다. 주먹다짐은 사업장 외부에서도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업무와 무관한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대법원(대법원 1995. 1. 24. 선고 948587 판결)은 달리 판단합니다. 대법원은 직장안의 인간관계 또는 직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하는 위험이 현실화되어 발생한 것으로서 업무와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으면 업무상재해로 인정하여야 할 것이고, 따라서 가해자의 폭력행위가 직장안의 인간관계와 관련된 것인 이상 망인이 직무의 한도를 넘어 상대방을 자극하거나 도발함으로써 발생한 경우가 아닌 한 업무와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여 직장안의 인간관계 또는 직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하는 위험이 현실화되어 발생한 것을 조건으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산업재해가 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대법원 판결의 이면을 음미해 봅니다. 사업장은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는 물론 인생관, 관심영역 등 다양한 사고구조를 지닌 사람들이 모인 장소입니다. 정치DNA가 고이 간직된 한국인으로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과 같이 국가적 현안에 대하여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내 생각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고, 상대방이 생각이 반드시 틀린 것도 아니기에 필연적으로 언쟁을 낳기 마련입니다. 한국인에게 정치적 소신은 자신의 자아정체성입니다. 누가 나의 정치적 소신을 무시한다면 격분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래서 다음 <기사>속의 주먹다짐을 마냥 비난하기도 어렵습니다.

 

문제는 산업재해의 인정여부입니다. 대법원의 법리를 대입하여 보면, 정치적 견해는 업무상 위험이 현재화한 것도 아니고, 업무수행상 필연적인 위험도 아닙니다. 사적인 감정의 충돌이기에 업무와 직접 연관은 없습니다. 그런데 업무수행 중 언쟁이 벌어지다가 이것이 정치적 견해의 충돌로 이어진다면 산업재해의 인정여지는 존재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불승인이라는 결론은 곤란합니다.

 

<기사>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찬반을 두고 주먹다짐을 벌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7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대한항공 인천발 호주 브리즈번행 노선을 운항한 기장과 부기장은 호주 호텔에서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및 대통령 탄핵 소추와 관련한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대화 도중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감정을 이기지 못한 둘은 서로를 폭행했다. 그 결과 기장은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고, 부기장도 부상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실을 확인한 대한항공은 대체 인력을 투입해 복귀 편은 아무 지장 없이 운항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항공은 "체류지 호텔에서 불미스러운 소동이 발생했으나 다음 날 스케줄이 없었고, 즉각적으로 대체 승무원을 투입해 운항에는 지장이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4/0005332578


<산업재해보상보험법>
37(업무상의 재해의 인정 기준) 근로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로 부상ㆍ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하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 다만,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相當因果關係)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업무상 사고
. 근로자가 근로계약에 따른 업무나 그에 따르는 행위를 하던 중 발생한 사고
. 사업주가 제공한 시설물 등을 이용하던 중 그 시설물 등의 결함이나 관리소홀로 발생한 사고
.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이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서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
. 사업주가 주관하거나 사업주의 지시에 따라 참여한 행사나 행사준비 중에 발생한 사고
. 휴게시간 중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행위로 발생한 사고
. 그 밖에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사고


<대법원 판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업무상의 재해라 함은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재해를 말하므로, 근로자가 타인의 폭력에 의하여 재해를 입은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직장안의 인간관계 또는 직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하는 위험이 현실화되어 발생한 것으로서 업무와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으면 업무상재해로 인정하여야 할 것이고, 따라서 가해자의 폭력행위가 직장안의 인간관계와 관련된 것인 이상 망인이 직무의 한도를 넘어 상대방을 자극하거나 도발함으로써 발생한 경우가 아닌 한 업무와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 할 것이다.
(대법원 1995. 1. 24. 선고 948587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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