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의 이 노래 : ‘파랑새’>
1997년은 김승우에게는 잊을 수 없는 한해일 것입니다. 비록 배우임에도 그 이전까지는 자신의 이름 석자가 아닌 당대의 미녀 ‘이미연의 남편’으로 더 유명했기 때문입니다. 마침 그가 출세의 계기가 된 드라마의 제목이 ‘신데렐라’였는데, 공교롭게도 김승우가 진정한 ‘신데렐라’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시청률도 폭발하고 인기도 폭발하여 마침내 ‘배우 김승우’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던 계기가 드라마 ‘신데렐라’였는데, 현실에서는 김승우가 진정한 ‘신데렐라’였습니다. 뭐든 흥하면 망하거나 위축되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드라마 ‘신데렐라’ 광풍에 빛이 바랜 드라마가 있으니, 그것은 ‘파랑새는 있다’입니다. 고급스러운 재벌가의 연애이야기가 주된 스토리인 것과 대조적으로 나이트클럽 ‘샹그릴라’에서 펼쳐지는 밑바닥인생의 연애이야기가 바로 ‘파랑새는 있다’였습니다.
하루라도 훈계를 하지 못하면 입에서 가시가 돋아나는 일부 ‘도덕군자’ 시청자가 ‘샹그릴라’에서 보여주는 선정적인 춤동작을 두고 핏대를 올리면서 일장의 훈계를 내세워서 파랑새는 있다’라는 드라마 자체도 자꾸만 스토리가 산으로 가는 상황이었기에, 더욱 ‘신데렐라’의 광풍이 거세졌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샹그릴라’에서 선정적인 막춤을 추는 무명용사 김성희의 인기는 아재들을 중심으로 하늘을 찔렀습니다. 비로소 배우라는 직업을 남들에게 소개하게 되었다고 나중에 진한 눈물을 흘리는 김성희의 고백에 시청자들은 뭉클한 가슴을 누를 수 없었습니다. 전 국민의 절대다수가 서민계층인데, 막상 서민드라마는 시청률이 그리 높지 않았던 것이 아이러니입니다. 그래도 유튜브가 없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공중파 드라마는 중박은 보장되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xejDhEjc20
로제의 ‘APT’가 인기를 끌면서 그 옛날 전설의 히트곡 윤수일의 ‘아파트’를 소환했듯이, 소수 매니아층을 중심으로 꾸준한 성원을 보냈던 ‘파랑새는 있다’의 팬들을 중심으로 이문세의 초창기 히트곡인 ‘파랑새’를 소환하였습니다. 이문세의 ‘파랑새’는 창법이 독특해서 인상적이었던 노래입니다. 초반부에는 중저음으로 부르다가 중반부부터 갑자기 피치를 올려서 불렀던 이문세의 ‘파랑새’ 창법은 아무래도 나훈아를 연상하게 합니다. 나훈아의 대표곡 중의 하나에서 현저한데, ‘머나 먼 고향’은 중저음의 초반부와 가성을 곁들인 중반부 이후의 창법이 달리 전개됩니다. 좋든 싫든 초창기의 이문세 창법에 나훈아를 염두에 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귓가에 지저귀던 파랑새
마음을 파닥이던 파랑새
푸쉬싯 날개짓이 예뻐서
늘 곁에 두고 싶던 파랑새
마음속에 파란 눈물 떨구고
꿈결처럼 먼 하늘로 날았네
https://www.youtube.com/watch?v=h4KW5p9Y9oo
물론 ‘파랑새’에서 선보인 이문세의 창법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아무래도 나훈아를 연상하게 만드는 창법은 본인에게 독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수나 배우나 타인의 아류로 인식하게 만들면 망하는 법입니다. ‘강수지 닮음꼴’을 내세웠던 하수빈이 처참하게 망한 것은 스스로 아류를 자처했기 때문입니다. 연예인 중에서 ‘제2의 아무개’를 내세워서 성공한 전례가 없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연예인은 ‘제2의 어쩌고’를 버리고 ‘제1의 아무개’ 또는 ‘유일무이 아무개’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문세가 ‘파랑새’ 이후의 변신은 대성공의 열쇠입니다.
그나저나 이문세의 ‘파랑새’는 연인을 비유하는 듯한 인상이 강한데, 비하여 드라마 ‘파랑새는 있다’는 밑바닥인생의 성공을 형상화한 것이 명백합니다. 이것은 드라마를 집필한 김운경 작가의 전작 ‘서울의 달’의 플롯과 유사한 점에서 추출할 수 있습니다. 김운경 작가는 본인 스스로 ‘서민드라마 전문 작가’라 부르기 때문입니다. ‘파랑새는 있다’에서 열연했던 주인공 이상인은 그 이후에는 이렇다 할 주연을 꿰차지 못하고 조연이나 단역을 전전하다가 가수로 전직해서도 신통치 않았고 현재는 연예계를 은퇴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주인공 정선경은 그에 비하면 낫지만, 지금은 연예계를 은퇴한 것으로 보입니다. ‘파랑새는 있다’라고 외쳤지만, 정작 주연배우들은 행동에 옮기지는 못한 인상입니다. 그러나 이문세는 아직도 건재합니다. 진정한 ‘파랑새’는 이문세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