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턴’, 그리고 노동현실과 노동법>
언제부터인가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를 두고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관용적으로 쓰입니다. 그런데 ‘믿고 보는 배우’를 넘어 ‘찾고 보는 배우’가 저에게는 존재합니다. 그는 꽃미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수히 많은 헐리우드 꽃미남 배우들 중에서 오로지 연기력 하나만으로 S급 중에서 S급으로 꼽히는 연기도사 로버트 드 니로입니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연기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아카데미 주연상 및 조연상 2회이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의 수상이 당연할 정도로 연기도사입니다. 칼같은 헐리우드 오디션 시스템에서 수십 년 동안 변함없이 캐스팅되는 것 자체가 연기력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어떤 배역을 맡아도 실제로도 그런 배역으로 사는 것처럼 메소드연기가 일품인 천성 배우입니다. 그가 말년에 주연으로 출연한 ‘인턴’이라는 영화는 그의 연기력의 진면목을 보여줍니다.
‘인턴’은 글자 그대로 로버트 드 니로가 ‘벤’이라는 배역을 통하여 막내딸 같은 나이의 앤 해서웨이(극중 이름은 ‘쥴스’)가 대표로 있는 패션의류회사에 인턴 역할을 하는 설정입니다. 청춘스타에서 내려와 이제는 미시 역에 어울리는 배우인 해서웨이는 예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보여 준 세련된 옷맵시처럼, 패션의류회사의 대표로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인턴이라는 명칭과 달리 벤은 전직 전문경영인답게 동료 근로자는 물론 쥴스의 멘토가 되어 경영상 어려움을 자상하게 조언을 합니다. 은퇴한 노인으로 전직 전화번호부 부사장까지 지낸 인물로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도 능하지 않고 동영상과 이메일도 능숙하지 않지만, 전문경영인의 경륜으로 이들의 멘토가 된다는 설정입니다. 그런데 이 설정이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특정한 사람을 위하여 벼슬을 만든다는 한자성어를 ‘위인설관(爲人設官)’이라 합니다. 그런데 인턴은 은퇴한 노인도 멘토가 될 수 있다는 설정을 위하여 다분히 작위적인 ‘위인설역’을 하였습니다. 은퇴한 현실의 노인은 대부분 단순노무직을 전전합니다. 건설일용근로자들 중에 놀랍게도 전직 삼성전자 부장, 전직 국민은행 지점장 등 엘리트 사무직군이 수두룩합니다. 아파트 경비원 중에서 전직 사무직군 종사자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많습니다. 쿠팡 배달기사 중에서 전직 증권회사 지점장도 있습니다. 믿기 어렵지만 사실입니다. 또한 ‘인턴’에서처럼 관리직 간부는 멘토가 되지 못합니다. 바로 이 대목이 ‘인턴’의 약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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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에서 벤은 인터넷, 이메일,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MZ세대들이 익숙한 것에 적응을 쉽게 하지 못하지만, 눈물겨운 노력으로 적응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현실 속의 은퇴자들은 대부분 적응을 하지 못하면서도 개선의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변해도 세상이 자기에게 맞추라고 강요를 합니다. 그것이 ‘꼰대’입니다. 꼰대는 자기에게 세상이 맞추라는 억지를 부리는 것이며, 또한 상대방의 배려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턴’이 더 비현실적인 것은 MZ세대들은 굳이 선배세대들에게 배우려 한다거나 가르침을 받으려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은퇴자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이나 사회의 풍조가 변함에 따라 선배세대들에게 익숙했던 업무방식이 통용되지도 않습니다. 하물며 스포츠에서도 경기문법 자체가 달라집니다. 가령, 과거에는 야구에서는 투수의 제구력이 강조되는 것이 당연한 가르침이었으나, 지금은 제구력보다는 강속구로 한가운데 던지는 것이 안타를 맞을 확률이 낮다는 것이 통계적 진실이기에, 투수는 강속구를 위한 근력운동과 웨이트에 충실합니다.
은퇴한 노인들 중에서 재취업을 원하는 분들 대부분은 종전의 직위와 급여를 원합니다. 그러나 종전의 직위와 급여를 보장받는 직군은 대부분 기술직이나 전문직에 국한됩니다. ‘인턴’에서처럼 사무직군 중에서 관리직을 유지하는 경우는 극히 소수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사업주는 대부분 오너인 경우인데, 오너가 관리를 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입니다. 인사, 재무, 생산관리, 영업 등의 사업의 핵심영역에서 굳이 관리직을 은퇴자에게 맡길 이유는 없습니다. 차라리 가족 등 특수관계인에게 맡기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현대차 생산직군 근로자들이 기를 쓰고 정년연장을 단협에서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차 오너일가가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인턴’은 노장과 청년의 화학적 결합을 그리려 했지만, 노동현실과 노동법은 그 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영화는 영화일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