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스포츠브랜드의 흑역사>
삼성, 하면 압도적으로 삼성전자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삼성의 출발은 삼성상회라는 곡물, 설탕 등을 팔던 일제강점기 대구 소재 기업이었습니다. 그 이후 삼성그룹의 창업자 고(故) 이병철 회장이 1954. 9. 대구에 세운 제일모직이 삼성그룹의 모태 기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삼성은 제일제당의 전신인 삼성상회로 출발하다가 제일모직이라는 섬유회사가 모태기업인 셈입니다. ‘제일’이라는 기업의 가치가 중심인 삼성이기에 자매 섬유회사인 제일합섬도 설립했습니다. 아무튼 당초부터 제일이 삼성의 기업 모토였기에 스포츠브랜드에서도 제일주의를 추구했습니다.
1970년대까지는 스포츠브랜드는 특별히 일반인에게는 그다지 의미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스포츠선수들에게만 효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나이키가 ‘생활스포츠’를 표방하면서 일반인에게 스포츠브랜드를 심기 시작하면서 스포츠브랜드가 급성장했습니다. 이 와중에 삼성과는 기업 사이즈가 많이 나는 화승이 나이키의 국내 상표권을 들여와서 짭짤한 재미를 보고, 국제상사가 프로스펙스로 광고시장에서 날아다니자 배가 아픈 삼성은 본격적으로 스포츠브랜드를 출시했습니다.
1. 다이나믹
새벽에 솟는 힘 다이나믹. 하루를 시작하는 다이나믹
아직도 cm송이 귓가에 맴돕니다. 그리고 80년대까지 광고물의 간판성우 조명남의 멘트가 인상적인 다이나믹 광고가 생생합니다. 제일합섬은 이미 70년대말부터 트레이닝복을 개발하여 고급트레이닝복의 대명사로 군림했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츄리닝계의 에르메스’ 정도로 고급트레이닝복이었습니다.
https://www.adic.co.kr/gate/video/show.hjsp?id=W1337614&typ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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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센 체력 슬기로운 마음! 명랑운동회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아직도 생생한 변웅전 전 아나운서의 멘트가 떠오르는 명랑운동회는 언제나 출연자가 트레이닝복을 입고 출연했습니다. 바로 이 명랑운동회의 스폰업체가 다이나믹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아재츄리닝’ 또는 ‘백수츄리닝’으로 불리는 트레이닝복이 대세인 시절에 다이나믹은 뭔가 있어보이는 트레이닝복이었습니다. 명랑운동회에서 보이는 다이나믹은 당시에도 뭔가 있어보였습니다. 당시 어머님에게 사달라고 조르다 단칼에 거절당한 아픔이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YbG0lCAnA
2. 엑셀
‘힘과 미의 스포츠 엑셀!’
엑셀하면 당연히 MS오피스의 엑셀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리엔트 시계가 삼성 갤럭시폰의 갤럭시와치 이전에 ‘갤럭시’라는 브랜드로 이미 시계를 제조했듯이, 제일합섬은 1982년에 ‘엑셀(Excell)’이라는 브랜드로 스포츠웨어를 판매했습니다. 엑셀이 라틴어에서 유래한 영어로 그 뜻이 매우 좋기에, 현대자동차에서는 ‘포니엑셀’에 이어 그냥 ‘엑셀(Excel)’이라는 상표로 자동차를 출시했습니다. 그래서 제일합섬과 현대차간에 상표권싸움이 붙은 적이 있었고, 양 그룹 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결과는 현대차가 이겼습니다. 함정은 현대차도 승소 직후에 엑셀 자체를 단종시켰다는 점입니다. 엑셀이라는 명칭에 걸맞지 않게 소형차였기에, 이문도 크지 않고 이미지도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엑셀은 대외 이미지 개선을 위하여 당시 인기스포츠인 복싱에 스폰서를 했습니다. 당시 최고 인기복서인 박종팔의 경기에 당당히 스폰업체임을 링의 기둥에 표시를 했습니다. 참고로 당시에는 매주 일요일 골든타임에 ‘MBC권투’가 정규 프로그램일 정도로 인기프로그램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rTYzq4fdw4
3. 위크엔드 스포츠
전술한 다이나믹과 엑셀은 그다지 반응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삼성 측은 다시 캐쥬얼 웨어의 1황인 위크엔드를 전면에 내세운 위크엔드 스포츠를 전면에 내세웁니다. 그리하여 갈매기를 형상화한 위크엔드 스포츠를 출시했습니다. 다음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무려 당대 최고인기 모델인 조용원을 내세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떠오르는 스터 이미키를 내세워 배경음악으로 그의 히트곡 ‘이상의 날개’를 썼습니다.
삼성 라이온즈 선수단은 유니폼은 물론 운동화까지 위크엔드 스포츠로 휘감았습니다. 그러나 삼성 라이온즈 이외의 선수들은 물론 일반 야구 선수들 중에서 위크엔드 스포츠를 선택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위크엔드 스포츠는 낮은 인지도로 인하여 내수용에 불과했기에 쇠락은 필연적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4pOcWDyLRg
4. 라피도
위크엔드 브랜드 자체는 제일합섬이 아닌 삼성물산 소속이었는데, 전술한 대로 당초 위크엔드는 패션브랜드였기에 소비자가 패션브랜드가 아닌 스포츠브랜드로는 낯설었습니다. 그래서 위크엔드 스포츠는 과감하게 ‘라피도’라는 브랜드로 변신했습니다. 스포츠브랜드는 당연히 스포츠의 스폰과 더불어 성장하기에, 국가대표 축구팀에 스폰을 하면서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그래서 나름 국내에서는 파이를 키워나갔지만, 아무래도 나이키와 아이다스라는 강자를 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중국으로 진출해서 생명력을 이어나갔습니다. 사실상 중국브랜드라는 굴욕을 얻고 있습니다.
5. 슬레진저
삼성의 제일주의가 이상하게 스포츠브랜드에서는 맥을 못추자 삼성그룹의 수뇌부는 뿔이 단단히 났습니다. 1980년대 중후반에 이르기까지 프로스펙스는 물론 후발주자 르까프에도 밀리자, 윔블던 테니스에 오랜 기간 스폰을 하던 ‘슬레진저’ 브랜드를 도입하였습니다. 실은 국내 의류산업의 선구자격인 삼성그룹으로서는 굴욕 차원이었습니다. 특히 위크엔드, 챌린저, 르망, 갤럭시, 로가디스 등 거의 전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던 삼성그룹으로서는 절치부심을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그러나 슬레진저는 철저하게 망했습니다. 그리고 삼성그룹은 브랜드연장계약을 거부했고, 슬레진저 국내사업부는 철저하게 망해서 시장표로 전락했습니다. 마치 피에르 가르뎅이 시장표로 전락한 것과 유사합니다.
6. 빈폴 스포츠, 아스트라
빈폴 스포츠는 위크엔드 스포츠가 망한 것과 똑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빈폴이라는 고급의류 브랜드를 스포츠는 물론 등산과 레저에도 도입했지만, 등산의 바람이 식으면서 노스페이스와 코롱스포츠에 철저히 밀렸습니다.
아스트라는 골프에 특화하여 나름 선전했습니다. 특히 박세리의 돌풍에 힘입어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안방브랜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은 과거 브랜드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타이틀리스트 등 외국 브랜드의 입지에는 밀리는 형국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