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 ~ 80년대에 한명회와 장희빈은 사극에서 맹위를 떨쳤습니다. 둘 모두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기에 사극의 소재로 안성맞춤이라는 특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둘 모두 국사 교과서에서는 단지 이름만이 등장하는 수준으로 거의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한명회는 사극에서는 대단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었지만, 정작 정통 국사학자들이 집필하는 국사 교과서에서는 무시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선왕조의 제도개혁은 물론 민생개혁 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고려를 폐하고 조선을 세운 명분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광범위한 문벌귀족이 형성되었습니다. 그 제도적 장치가 바로 음서제였습니다. 음서제는 문벌귀족사회라는 신분사회를 고착화하였고(아직도 카스트제도에 신음하는 인도를 연상하면 됩니다), 문벌귀족에게 농장이라는 이름의 광범위한 토지겸병을 확립하게 하여 백성들을 착취하였던 것이 고려 문벌귀족사회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도전은 조선왕조개창의 명분으로 내세웠고, 실제로 이행한 것이 과거제의 도입과 농장의 해체를 가져온 과전법의 공포였습니다. 그러나 한명회는 계유정난의 공로로 음서제, 즉 뒷구멍으로 벼슬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당대에도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단군 이래 유교적 가치관이 관통한 한국 사회에서는 무엇보다도 공정한 인재등용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MZ세대들에게 ‘공정’이라는 화두의 출발점이 입시, 그리고 입사제도에서 출발하는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그런데 다음 대법원 판결에서는 ‘불공정한 채용’으로 합격한 사안이 있음을 확인하였음에도 ‘업무방해죄’가 무죄라고 선언하였습니다. 불공정한 채용을 한 지방공기업의 대표자는 분명 ‘나쁜 놈’인데, 그 ‘나쁜 놈’을 무죄방면하는 것은 국민정서법에 크게 반합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 대법원 판결은 정당한 판결입니다. 채용절차공정화법에 ‘부정채용죄’를 신설하지 않는 이상 현행 업무방해죄의 해석으로는 무죄가 맞습니다.
○형법 제314조가 규정한 업무방해죄의 수행방법은 ‘허위사실유포’, ‘위계’, ‘위력’ 이 세 가지입니다. 그 이외의 방법으로는 당해 범죄를 구성할 수 없습니다. 다음 <대법원 판례1>에서 등장한 지방공기업의 대표자(사장)인 피고인은 인사규정상의 채용공고의 자격을 무단으로 변경했습니다. 그래서 특정 지원자를 부당하게 합격하게 했습니다. 소박한 국민의 시각으로 봐도 당해 대표자는 분명 ‘나쁜 놈’이 맞습니다. 민사책임이나 행정책임의 대상인 것도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형사책임은 다릅니다. 형법전에 규정된 범죄구성요건을 충족하는 행위만이 업무방해죄가 됩니다.
○이 사안에서 적용할 수 있는 행위방법(대법원 등 법원실무에서는 일상에서 전혀 쓰이지 않는 일본식 한자어인 ‘행위태양’이라는 말을 씁니다. 국민짜증 유발자입니다)으로는 ‘위력’과 ‘위계’가 있습니다. 대법원은 ‘위력’에 대하여 ‘ ‘위력’이라 함은 사람의 자유의사를 제압·혼란케 할 만한 일체의 유형·무형의 세력으로서 폭행·협박은 물론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지위와 권세에 의한 압박 등이 포함되며, 그러한 위력은 반드시 업무에 종사 중인 사람에게 직접 가해지는 것이 아니더라도 일정한 물적 상태를 만들어 그 결과 사람으로 하여금 자유롭고 정상적인 업무수행 활동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행위를 포함한다(대법원 2012. 5. 24. 선고 2011도7943 판결)‘라고 일관되게 판시합니다. 그런데 위 사안에서 대법원은 ’공기업 대표이사인 피고인은 직원 채용 여부에 관한 결정에 있어 인사담당자의 의사결정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어 관련 업무지시를 위력 행사로 볼 수 없고‘라고 판시합니다. 채용의 궁극적 결정권자인 대표자가 업무지시를 하는 것은 시민들의 눈으로 보기에 부당할 수는 있지만, 적법한 권한 내의 행위이기에 위력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다음으로 검토할 수 있는 행위방법으로는 ‘위계’입니다. 위계란 남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행위자 그 자신에게는 언제나 그 위계가 진실입니다. 가령, 사기꾼이 남을 속이는 행위는 사기꾼 본인에게는 진실입니다. 법률의 공간에서 위계나 사기나 언제나 남을 전제로 한 단어입니다. 대법원은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에서 ‘위계’란 행위자가 행위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상대방에게 오인, 착각 또는 부지를 일으키게 하여 이를 이용하는 것(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3도5117 판결)‘라고 판시하는바, ’상대방‘이라는 타인성을 전제로 하는 개념임을 명백히 하였습니다. 따라서 <대법원 판례2>에서 보는 것처럼, 모두가 공범자인 경우에는 ’위계‘가 될 수 없습니다. 만약에 부정채용죄라는 것이 있다면 모두 공동정범은 될 수 있지만, 오인, 착각, 또는 부지의 상대방은 될 수가 없습니다.
○위 <대법원 판례2>에서 ‘신규직원 채용권한을 갖고 있는 피고인 및 위 시험업무 담당자들이 모두 공모 내지 양해하에 위와 같은 부정한 행위를 하였다면 법인인 이 사건 공사에게 위 신규직원 채용업무와 관련하여 오인·착각 또는 부지를 일으키게 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결론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위 <대법원 판례1>과 같은 유형의 사안에서 하급심 판사가 판결문을 낭독하면서 무죄방면의 불합리를 통탄해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업무방해죄의 어의에 의한 한계 때문입니다.
○대다수 공무원들은 자신들도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공무원의 공무나 민간기업의 업무나 전부 남의 일을 하는 것이고 대상이 다를 뿐 공무나 업무나 그게 그거라고 생각합니다. 직업의 하나로 공무원을 택한 것이지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물론 일반인의 시각도 대체로 동일합니다. 그런데 형법전은 공무집행방해죄(형법 제136조)의 행위방법으로 ‘폭행’과 ‘협박’만을 규정합니다. 업무방해죄의 특별법적인 성격을 지녔음에도 양자를 달리 규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공무를 ‘위력’이나 ‘위계’로 방해하는 경우에 처벌이 가능한가에 대하여 대법원 전원합의체(대법원 2009. 11. 19. 선고 2009도4166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다퉜습니다. 다수의견은 부정하였고, 소수의견은 공무나 업무나 일이라는 측면에서 양자는 동일하기에 긍정했습니다.
<형법> 제314조(업무방해) ①제313조의 방법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컴퓨터등 정보처리장치 또는 전자기록등 특수매체기록을 손괴하거나 정보처리장치에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정보처리에 장애를 발생하게 하여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제136조(공무집행방해) ①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공무원에 대하여 그 직무상의 행위를 강요 또는 조지하거나 그 직을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대법원 판례1>지방공기업 사장인 피고인이 내부 인사규정 변경을 위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채용공고상 자격요건을 무단으로 변경하여 공동피고인을 2급 경력직의 사업처장으로 채용한 행위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기소된 사안에서, 채용공고가 인사규정에 부합하는지 여부는 서류심사위원과 면접위원의 업무와 무관하고, 피고인들이 서류심사위원과 면접위원에게 오인, 착각 또는 부지를 일으키게 하여 이를 이용하였다고 볼 수 없으며, 공기업 대표이사인 피고인은 직원 채용 여부에 관한 결정에 있어 인사담당자의 의사결정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어 관련 업무지시를 위력 행사로 볼 수 없고, 피고인들이 서류심사위원과 면접위원, 인사담당자의 업무의 공정성, 적정성을 해하였거나, 이를 해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아 주위적 및 제1, 2 예비적 공소사실을 전부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수긍한 사례 (대법원 2022. 6. 9. 선고 2020도16182 판결) <대법원 판례2> 형법 제314조 제1항 소정의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에 있어서의 ‘위계’라 함은 행위자의 행위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상대방에게 오인·착각 또는 부지를 일으키게 하여 이를 이용하는 것을 말하는바( 대법원 2007. 6. 29. 선고 2006도3839 판결 참조), 원심이 적법하게 인정한 사실관계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공사의 신규직원 채용시험업무 담당자들인 공소외 1 등 공소외인들이 일반행정 6급시험 응시자인 공소외 2의 필기시험성적을 조작한 것과 전문계약직인 사서직 응시자 공소외 3을 면접대상자에 포함시킬 수 있도록 응시자격 요건을 변경한 것은 피고인의 부정한 지시에 따른 결과일 뿐이지 피고인의 행위에 의해 위 시험업무 담당자들이 오인·착각 또는 부지를 일으킨 결과가 아니고, 이와 같이 신규직원 채용권한을 갖고 있는 피고인 및 위 시험업무 담당자들이 모두 공모 내지 양해하에 위와 같은 부정한 행위를 하였다면 법인인 이 사건 공사에게 위 신규직원 채용업무와 관련하여 오인·착각 또는 부지를 일으키게 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는 피고인의 위 시험업무 담당자들에 대한 부정한 지시나 이에 따른 업무 담당자들의 부정행위로 말미암아 공사의 신규직원 채용업무와 관련하여 오인·착각 또는 부지를 일으킨 상대방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피고인 등의 위 부정행위가 곧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에 있어서의 ‘위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대법원 2007. 12. 27. 선고 2005도6404 판결) <대법원 판례3> 공무집행방해죄는 폭행, 협박에 이른 경우를 구성요건으로 삼고 있을 뿐 이에 이르지 아니하는 위력 등에 의한 경우는 그 구성요건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다. 또한, 형법은 공무집행방해죄 외에도 여러 가지 유형의 공무방해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을 개별적·구체적으로 마련하여 두고 있으므로, 이러한 처벌조항 이외에 공무의 집행을 업무방해죄에 의하여 보호받도록 하여야 할 현실적 필요가 적다는 측면도 있다. 그러므로 형법이 업무방해죄와는 별도로 공무집행방해죄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사적 업무와 공무를 구별하여 공무에 관해서는 공무원에 대한 폭행, 협박 또는 위계의 방법으로 그 집행을 방해하는 경우에 한하여 처벌하겠다는 취지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공무원이 직무상 수행하는 공무를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업무방해죄로 의율할 수는 없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 (대법원 2009. 11. 19. 선고 2009도4166 전원합의체 판결) |
○얼핏 다수의견이 타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공무방해행위에 대한 제재가 없다면, 궁극적인 피해자는 일반국민입니다. 행정작용이 정당하게 집행될 소지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형법전의 ‘위계’, ‘위력’, ‘폭행’, ‘협박’이라는 단어의 중요성은 이렇게 현실에서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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